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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홍의민족(紅衣民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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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홍의민족(紅衣民族)

입력
2002.06.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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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중략…) /나는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머리는 깨어져 산산이 부서져도/기뻐서 죽사오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심훈ㆍ‘그날이 오면’)민족 문학가 심훈은 조국이 일제치하에서 해방되는 그날을 그리며 감격의 노래를 불렀지만, 한국 축구사에서 ‘그날’은 월드컵16강에 진출하는 날이었다.

■그날 붉은 물결 넘실거리는 벅찬 승리의 축제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하늘에는 축포가 울리고 태극기가 전국을 뒤덮었다.

전국의 공터를 ‘붉은 광장’으로 만든 인파는 서로를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얼굴 모르는 낯선 사람들도 이 땅에 살고 있다는 인연 하나로 기꺼이 하나가 됐다.

붉은 악마 신드롬은 열정과 단결을 상징하는 한국의 새로운 문화코드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제 ‘가무음곡을 즐기는 백의(白衣)민족’의 이미지는 자신감과 정열을 내포한 홍의(紅衣)민족의 그것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흰색이 조선조 성리학의 이념에 따른 절제와 검소ㆍ결백의 미덕을 담고 있다면, 붉은 색은 아시아 전체를 호령했던 고구려의 웅혼한 기상과 분출하는 에너지를 표출하고 있는 셈이다.

붉은 색은 한국사회를 이끌어 갈 또 다른 동력과 상징색으로 떠 올랐다. 계층과 성ㆍ연령을 뛰어넘는 월드컵 응원열기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전통적인 코리아 브랜드마저 바꿔가고 있다.

■수 백만명이 거리로 뛰쳐나와 열띤 응원전을 펼치면서도 단 한건의 불상사도 일어나지 않는 성숙한 시민의식에 세계가 경탄하고 있다.

이 같은 성숙한 길거리 응원문화는 4ㆍ19, 광주항쟁, 6ㆍ10시위 등 현대사의 격랑을 거쳐오며 대규모 시위를 통해 얻은 소중한 자산인지도 모른다.

군사독재 시절 강력한 집단주의에 저항했던 시민의식이 월드컵이란 제전을 맞아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고 있다.

붉은 색으로 결집된 우렁찬 기백을 민족의 색깔로 살려나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 월드컵 이후의 과제일 듯 싶다.

이창민 논설위원

cm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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