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의 급성장=스피드+체력+멀티 플레이어.’거스 히딩크 감독은 단기적으로는 월드컵 16강 진출, 장기적으로는 한국축구의 세계화를 위해 일찍부터 3가지 카드를 구상했다. 바로 스피드, 체력, 멀티 플레이어였다. 이 같은 판단은 히딩크 감독의 뛰어난 판단력과 예지력을 보여준다.
히딩크 감독의 성공요인은 1990년대 중반 애틀랜타 올림픽 대표팀을 지휘했던 비쇼베츠 감독과의 비교를 통해 더욱 두드러진다.
비쇼베츠 감독은 지나치게 안전 위주의 축구를 강조했다. 바로 지지 않는 축구였다. 그러다 보니 한국축구를 지탱했던 원천이었던 기동력이 자연히 실종됐다. 득점루트는 윤정환-최용수가 사실상 전부였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한국축구의 토양을 정확히 꿰뚫어 봤다. 스피드를 살려 기동력을 극대화 하는 일은 단기처방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한국축구를 발전시킬 수 있는 힘이 된다고 판단했다. 히딩크의 판단은 이번 대회를 통해서 빛을 발하고 있다. 스피드가 뛰어난 팀이 득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대이변의 주인공 세네갈의 돌풍은 빠른 스피드에서 나왔다. 사우디아라비아를 8-0으로 격파하며 8강까지 진출한 독일도 빠른 스피드가 강점이다. 한국 축구 역시 스피드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스피드와 체력은 한 몸이다. 히딩크 감독은 체력이라는 반석 위에서 스피드가 살아난다고 판단했다. 수 개월간 계속된 지옥훈련은 한국축구의 강점인 스피드를 살리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
히딩크 감독은 체력훈련은 겨울에만 한다는 ‘한국식’ 사고를 개혁했고 월드컵 직전까지 체력훈련의 강도를 높여갔다. 막강한 체력에서 나오는 철저한 압박은 이제 한국의 팀 새로운 컬러가 됐다. 90분 내내 꺼지지 않는 스피드는 체력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었다.
쉴새 없이 이어지는 압박 역시 체력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하다. 하프라인에서 한국의 미드필더 3명이 상대선수를 향해 ‘말미잘’ 형태로 달려드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라는 게 외신기자들의 한결 같은 평가다.
조직에는 야구(자기 역할이 분명한 조직), 축구(자기역할이 있지만 필요에 따라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는 조직), 복식 테니스(일의 구분이 없고 필요에 의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조직) 등에 맞는 유형이 있다.
세계적 석학 피터 드러커가 내린 조직에 대한 규정이다. 히딩크 감독은 1년 5개월 동안 한국대표팀을 야구+축구+테니스를 합쳐놓은 다기능적 조직으로 만들어냈다. 이 같은 조직력 극대화는 바로 전선수의 멀티 플레이어화를 통해 가능했다.
히딩크 감독의 멀티플레이어론은 국내 전문가들의 포지션 전문화와 충돌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선수들의 전술 이해도가 크게 향상되고 톱니바퀴처럼 잘 맞아떨어지는 커버 플레이가 이뤄지는 것은 바로 히딩크의 이 같은 ‘다기능 선수론’에 기반을 두고있다.
김정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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