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만 많고 실속이 없는 펀드가 주가의 발목을 잡고 있다.우리나라의 펀드 수는 세계 2위이지만, 펀드당 자산 규모는 세계 최하위권인 것으로 드러났다. 소규모 자투리 펀드가 너무 많아 상당수 펀드는 사실상 방치되고 있는 셈이다. 또 신상품과 단기 투자를 선호하는 투자자들의 성향으로 펀드 운용 기간이 너무 짧은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 펀드당 수탁고 평균 226억원 불과
17일 한국펀드평가가 미국 투자신탁협회(ICI) 자료를 분석한 결과 주요 38개국 가운데 우리나라의 펀드 수는 7,497개에 달해 미국의 8,309개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했다. 프랑스(7,474개) 룩셈부르크(6,508개) 스페인(2,501개)이 그 뒤를 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펀드의 총 수탁고는 170조원에 불과, 펀드당 운용자산 규모는 평균 226억원에 불과했다. 미국의 총 수탁고가 6조4,145억달러(환율 1230원 기준시 7,889조8,350억원)에 달하고 펀드당 평균 운용 자산이 7억7,199만달러(9,495억원)인 것에 비하면 펀드 수만 많을 뿐 펀드당 평균 수탁고는 미국의 2.3%에 불과한 것이다.
일본도 총 수탁고가 4,659억달러, 펀드 수는 2,744개로 평균 수탁고가 1억6,978만달러(2,088억원)였다. 펀드 수는 우리가 일본보다 3배 가까이 많지만 펀드당 규모는 일본이 우리의 10배에 이른다.
한편 대부분의 펀드가 설정된 지 3년을 넘고 50년을 넘는 장수 펀드도 적지않은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 펀드들은 전체 펀드의 80%가 3년도 안된 것으로 조사됐다. 펀드 설정년도별 자산 운용 규모를 보면 2002년 설정된 펀드의 수탁고가 전체 수탁고의 28.7%로 가장 많았고 2001년 27.7%, 2000년 24.4%였다. 1999년 설정된 펀드는 14%, 98년 펀드가 3.4%에 그쳤고, 97년 이전에 설정된 펀드는 1.8%에 불과했다.
■ 신상품만 선호, 단기 펀드 남발
이처럼 우리나라 펀드들이 대부분 소규모 단기 펀드인 것은 장기 투자에 대한 투자자들의 인식 부족과 투신운용업계의 잘못된 관행 때문. 한국펀드평가 우재룡 대표는 “외국에선 투자자들이 설정된 지 3년도 채 안된 펀드는 운용 능력이 검증되지 않았다며 돈을 맡기지 않는다”며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투자자들이 무조건 신상품만 선호함에 따라 소규모 신규 펀드만 계속 남발되고 있어 펀드 수는 세계 2위지만 펀드당 규모는 세계 최하위권이라는 기형적인 모습을 갖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펀드의 환매수수료 부과 기간을 마치 펀드 만기로 잘못알고 있는 것도 펀드 단기화의 요인. 펀드판매사들도 펀드 판매 직원들마저 환매수수료 부과 기간을 마치 펀드 만기로 간주, 고객들에게 돈을 찾아갈 것을 권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실정이다.
■ 방치된 펀드 많아, 대형화 장기화 절실
소규모 단기 펀드들의 남발에 따른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투자자들이다. 고객들은 자신의 펀드가 전문가에 의해 잘 관리되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펀드매니저들이 일일이 관리하기 힘든 펀드들이 많다. 한 펀드매니저는 “펀드매니저 한명이 많으면 50개의 펀드를 관리하는 경우도 있다”며 “한 펀드당 종목수가 다시 수십개에 달한다는 점에서 펀드매니저 혼자서 이 많은 펀드를 제대로 관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일부 소규모 펀드는 포트폴리오 구성도 안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때문에 당국에선 10억원 미만 펀드에 대해서는 대형 펀드에 통폐합할 수 있는 규정을 두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 소규모 펀드의 경우 대부분 세제 혜택이 있는 펀드이거나 원금이 깨진 경우가 많아 통폐합할 경우 고객들의 반발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삼성투신운용 황의춘 선임펀드매니저는 “거액의 단기투자보다는 소액이라도 꾸준하게 장기투자하는 것이 결국 큰 돈을 만든다는 투자자들의 인식 전환과 대박을 노리기 보다는 시장을 사겠다는 생각으로 투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투신운용업계도 신상품 출시에만 주력할 것이 아니라 펀드의 대형화와 장기화를 위해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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