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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66)연예인 어제와 오늘(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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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66)연예인 어제와 오늘(下)

입력
2002.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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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코미디언 석 현(石 玄ㆍ현 전국연예인노동조합위원장)도 참 별난 사람이다.내가 부산 어깨 출신인 그와 알게 된 것은 1960년대 중반 서울 스카라극장 뒤를 배회하던 때이다. 근처 다방에서 죽치고 있는 무명 연예인들은 모두 그를 두려워했지만 그는 이상하게도 내게는 무척 잘 했다. 춘천에서 그래도 싸움깨나 하던 나와 뭔가 통했던 모양이다.

97년 12월 대통령선거 때의 일이다. 유세가 시작되자마자 주위에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 편에 서달라는 제의가 끊임없이 들어왔다.

당시 나는 한나라당과는 전혀 관계가 없던 때였다. 유세 제의가 하도 집요해 결국 홍콩으로 피신을 갔다.

보름여 홍콩에 머물다 대선 투표일(12월18일)을 5일 앞두고 ‘이제는 끝났겠지’하는 생각에 돌아왔는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내가 들어본 적도 없는 ‘한나라회’ 회원이 돼 있는 것이었다.

이 모임은 한나라당 소속 연예인들이 만든 것으로 음악평론가 황문평(黃文平), 가수 현 철(玄 哲) 김수희(金秀姬) 탤런트 임채무(林彩茂) 코미디언 남보원(南寶元) 최병서(崔炳書) 이용식(李龍植) 등 기라성 같은 선후배 연예인들이 회원이었다.

알고 보니 모두 당시 한국연예인협회장이었던 석 현이 주동이 돼 만든 단체였다. 내 이름은 그가 나와의 의리만 믿고 내 허락도 없이 올린 것이었다.

그러나 화를 내도 별 수 없었다. 더욱이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이한동(李漢東) 대표위원까지 부산 유세에 참가해줄 것을 부탁하니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국민신당 이인제(李仁濟) 후보 바람이 거세게 불던 부산에서 딱 한번 유세에 참석했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이후 김대중(金大中) 정부는 나를 무조건 아웃사이더 취급을 했다. 청와대 방문 같은 행사가 있으면 나를 아무 이유없이 제외시켰다. 한 마디로 국민의 정부에 미운 털이 박힌 것이다.

그래도 내가 석 현을 미워할 수 없는 것은 그가 후배들 중 제일 가는 의리파라는 점이다. 그는 무명 연예인의 빈소에 제일 먼저 도착하는 ‘장례위원’이었다.

87년 11월1일 나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석 현이 앞장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문상을 왔다. 거의 모든 선후배들에게 연락을 해 한양대 부속병원 영안실은 문상객들로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연예인 이야기는 후배 코미디언 이용식 이야기로 맺어야 하겠다. 그는 어머니 장례식 때도 이틀이나 자리를 지켰던 절친한 후배다.

그가 사람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지난달 중순 한국축구대표팀의 서귀포 훈련 때 잘 드러났다.

제주시에서 낙지요리 전문점을 하는 그가 낙지와 온갖 싱싱한 생선을 가득 담고 대표팀이 묵고 있던 파라다이스 호텔로 찾아간 것이다.

그는 정성을 다해 낙지 요리를 대접을 했고 40분 동안이나 특유의 익살맞은 개그 쇼를 선보였다.

우리 대표팀이 잉글랜드 대표팀과의 친선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하자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형님, 어떻게 해서 우리 대표팀이 잘 싸운 줄 아세요? 그 싱싱한 낙지 덕분이라구요. 죽은 사람도 살리는 낙지 요리가 젊은 대표팀을 밤새 잠 못 자게 했고 대표팀은 그 분풀이로 강호 잉글랜드와 비길 수 있었던 것이에요.”

말이 되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이용식이 사람 대접할 줄 아는 것은 알아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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