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경 강력과장을 끝으로 40년간 근무하던 경찰에서 퇴직했다.수사경험을 살려 수사연구관으로, 또 보안전문 업체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역시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1983년 5월에 발생한 한남동 형제 강도 사건은 그래서 더욱 잊지 못한다.
당시 21세, 19세였던 범인 형제는 10년 전 부모와 사별한 뒤 하나밖에 없는 누나에게마저 버림을 받았으나 좌절하지 않고 신문팔이와 구두닦이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고등학교를 마쳤다.
당시 형은 여고 3학년생 여자친구와 동침한 게 임신이 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동거 중이었다.
불행은 출산일을 앞둔 여자친구가 임신 중독증으로 쓰러지면서 시작됐다.
그녀를 급히 입원시켜야 했으나 입원비 3만원이 없었다. 다급해진 형제는 10년 전 자신들을 버린 친 누나를 찾아가 사정이야기를 하며 도와 달라고 매달렸으나 누나는 오히려 “강도가 들었다”며 112에 신고해 쫓아 버렸다.
눈물을 흘리며 쫓겨나온 형제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도둑질만은 절대 않겠다’는 자신과의 결심을 한번만 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남의 집 담을 넘었다. 그러나 허술한 행적은 주인에게 들켰고, 당황한 형제는 주인을 찌르고 반지와 현금 2만5,000원을 빼앗아 달아났으나 1주일 만에 검거되었다.
형제를 붙잡은 형사는 그들의 딱한 사정을 듣고 일부러 수갑도 채우지 않은 채 도주의 기회를 주고자 했다. 그러나 형제는 하루 종일 그 형사를 고분고분 따라 다니다가 경찰청까지 왔다.
그때 겨우 태어난지 일주일 된 아기를 안고 찾아온 여학생이 “아이를 데리고 갈 데가 없으니 제발 한 명이라도 석방해 달라”며 애원하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다. 난 그러나 그녀를 애써 외면했고 형제는 2년형을 선고 받았다.
형제는 2년후 산모와 아이를 찾아 헤맸으나, 이미 자취를 감춰버린 뒤였다고 한다. 혹시 어린 산모가 절망한 끝에 자살을 시도하지나 않았을까?
하나밖에 없는 누나로부터 버림받아 인생의 쓴맛을 느끼고 피붙이 마저 잃어버린 형제를 생각하면 지금도 회한이 치밀어 오른다.
그때 징계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형제중 한 사람이라도 석방했더라면 어린 모자를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 때늦은 후회지만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최중락 경찰청 수사연구관·에스원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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