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의 도시' 폴 오스터 지음ㆍ윤희기 옮김폴 오스터(55)는 대중적인 성공과 높은 문학적 평가를 동시에 누리는 행복한 미국 작가다.
오스터가 현란하고 실험적인 언어를 통해 풀어놓는 신비로운 이야기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한 기막힌 은유이기도 하다.
폴 오스터의 초기 작품인 장편소설 ‘폐허의 도시’(1987년 작)도 마술 같은 언어 기교와 지적인 사색으로 가득하다.
안나 블룸이 실종된 오빠를 찾아 폐허의 도시로 떠난다.
어제 있었던 것이 오늘 사라지는 곳, 굶주림과 피로에 시달려야 하는 곳, 죽을 때까지 달려야 하고 죽기 위해서 몸을 던지는 곳, 고통 없이 죽도록 도와주고 또 죽여주기까지 하는 곳. 폐허의 도시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빗댄 것임은 물론이다.
소설은 안나 블룸이 고향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식을 갖췄다. 그 편지는 지옥 같은 도시에서 살아 남기 위한 투쟁의 기록이기도 하다.
오스터의 무기 중 하나는 영상보다도 강렬하게 문자를 짜는 힘일 것이다. 그가 묘사하는 도시는 지구의 종말을 그린 수많은 영화보다도 섬뜩하다.
“그들은 짐승처럼 음식 찌꺼기를 허겁지겁 뜯어먹고, 뼈만 앙상한 손가락으로 쓰레기더미를 열심히 뒤지고, 떨리는 턱으로 무엇인가를 계속 우물우물 씹지만, 그래도 배가 고프긴 마찬가지다. 서서히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 입 안으로 들어간 음식이 뜨거운 불길이 되고 광기가 되어 뱃속을 완전히 태워 버린다.”
작가는 그 암울한 폐허 위에서 사랑과 희망을 찾는다. 안나 블룸은 오빠의 친구와 함께 살면서 행복을 느끼고, 동성의 친구를 만나 우정도 나눈다.
작가는 날마다 마지막 같은 이 끔찍한 세상을 견딜 수 있는 힘은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한다.
책의 마지막에 이르러 사랑에 기대어 “꼭 다시 편지를 쓰겠다”고 다짐하는 안나 블룸처럼.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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