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낮에 찾아본 서울 시내 몇몇 투표소들 풍경은 걱정했던 그대로였다.어디서든 투표를 기다리는 유권자들보다 투표요원들이 더 많았다. 투표소 안에서는 느긋한 분위기 속에서 한담들이 오갔다.
애가 탄 한 지역선관위 직원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월드컵대회 한 복판으로 선거일이 정해졌을 때부터 어차피 예상했던 현상 아닙니까”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이날 만난 시민들 가운데 월드컵 열기를 선거 외면의 이유로 든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새벽 서울역에서 가족과 함께 열차를 기다리던 한 30대는 “누굴 찍든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 경험을 이미 충분히 했다”며 “후보 소개물을 들여다보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 치워버렸다”고 냉소했다.
40대 주부는 “내가 찍은 사람이 또 언제 감옥에 갈 지 알 수 없는 일 아니냐”며 “더 이상 배신 당하기 싫다”고 고개를 저였다.
한 대학생은 불쾌한 표정으로 단호하게 내뱉었다. “월드컵 때문이라고요? 유권자들이 축구경기와 주권을 바꿀 정도로 그렇게 어리석지는 않습니다.”
선거일 공항과 역에 줄을 서있거나 고속도로를 메운 차량 속의 사람들은 결코 ‘나라 일에 관심없는 무책임한 부류’들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뜻밖에도 왜 투표를 하지 않는 가에 대해 저마다 분명한 이유들을 갖고 있었다. 답답하고 짜증나고, 그렇다고 대안도 마땅치 않은 정치현실이 그 것이었다.
정당들과 선거당국은 이번에도 다양한 분석들을 내놓았다. 늘 그랬듯 날씨, 세대별 성향, 징검다리 휴일, 부족한 홍보에 짧은 선거운동 기간, 게다가 이번에는 월드컵 과열 분위기가 낮은 투표율의 주범이 됐다.
이날 맘먹고 투표소에 나왔다는 한 유권자는 “정치인들이 낮은 투표율의 이유를 스스로가 아닌 밖에서만 찾으려 드는 한 앞으로도 국민들은 투표소로 끌어들이지 못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진희 사회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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