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의 투표율을 보인 13일 지방선거. 전국을 붉은 물결로 뒤덮고 있는 월드컵 열풍과는 정반대로 극단적 정치무관심이 적나라하게 표출됐다.전국 1만3,461개 투표소는 이날 하루종일 한산한 모습이었고, 젊은 유권자는 가뭄에 콩 나듯 했다. 그나마 한 표를 행사했지만 광역ㆍ기초단체장 말고는 누구를 찍었는 지 조차 모르는 유권자들이 태반이었다.
반면 한산한 투표소와는 대조적으로 유원지, 골프장, 공항, 고속도로는 행락객들로 넘쳐 났다.
■ ‘젊은이 어디 없나요’
이날 오전 서울 교동초등학교에 마련된 종로1,4가동 제 2투표소. 젊은이들은 간 데 없고 50~70대 장년ㆍ노년층이 줄을 서 있었다.
서울 성북구 안암동 등 대학생 유권자들이 밀집한 대학가의 투표소도 사정은 마찬가지. 종로1,4가동 제 2투표소에서 만난 김모(72)씨는 “우리 같은 노인들 보다 젊은 사람이 투표해야 좋은 사람을 고르는 데…”라며 혀를 찼다.
집에서 월드컵 TV 중계 등을 시청하며 선거권을 포기한 유권자도 속출했다. 이모(29ㆍ회사원)씨는 “오후에 투표소를 찾을 계획이었는데, 중국-터키전을 보느라 투표를 포기했다”고 털어놓았다.
■ 손가는 대로 찍어
광역ㆍ기초의회 후보는 표를 던진 유권자들에게 조차 관심 밖이었다. “구청장, 시장은 알겠는데 의원 후보는 도대체 누가 누구인지…” 곳곳에서 투표를 끝내고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 유권자들의 볼멘 소리가 흘러나왔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제 2투표소에서 투표를 한 조 훈(33ㆍ회사원)씨는 “광역의원은 당을 보고 찍었는데 기초의원 후보 2명은 고민 고민 끝에 공란으로 남겼다”고 말했다.
선호 정당이 없어 5장이나 되는 투표용지 중 광역ㆍ기초단체장 외는 아예 손가는 데로 기표하는 유권자도 속출했다.
■ ‘후보이름이 없어요’
복잡해진 투표절차로 해프닝이 잇따랐다. 1차 투표를 마친 유권자들이 투표장을 나서려다 선거사무원의 ‘제지’를 받고 2차 투표용지를 받으러 가는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또 일부 투표자들은 정당이름만 인쇄돼 있는 비례대표 투표용지를 받고는 “왜 후보 이름이 없냐”며 황당해 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고모(31ㆍ서울 중랑구)씨는 “골목 안에 있는 투표소를 찾느라 한참이나 걸렸다”며 “골목 밖에다가 투표소 방향 표시를 잘 보이도록 해놓는 작은 성의가 아쉽다”고 말했다.
■ 행락객 곳곳 붐벼
임시 휴일인 이날 서울 근교를 비롯한 전국의 유원지는 행락객들로 크게 붐볐다. 오후2시까지 13만2000여대의 차량이 경부, 서해안, 영동고속도로를 통해 서울을 빠져나갔고, 4만2,000여명이 용인 에버랜드를 찾는 등 수도권의 행락 인파는 지난 주말과 비슷했다.
특히 인천공항은 아침 일찍부터 해외 여행객들이 몰려 혼잡을 빚었다. 오전 한때 출국 수속을 기다리는 여행객들의 줄이 100m에 달하기도 했다.
전국의 각 골프장에도 새벽부터 골퍼들이 몰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최기수기자
mount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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