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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왜 더 이상 나가지 못하나

입력
2002.06.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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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15일)은 남북 정상회담 2주년이 되는 날이다.2년 전 14일 밤 11시 20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양의 백화원 초대소에서 5개항의 공동선언문에 서명했다. 선언서를 교환한 뒤 양 정상은 손을 맞잡아 치켜들고 민족사의 새장이 열렸음을 내외에 알렸다.

김 위원장의 손바닥이 유난히 붉었던 기억이 새롭다. 서명은 14일 밤 이뤄졌지만 선언문이 15일자로 돼 있어 정상회담에는 6ㆍ15라는 수식어가 붙게 됐다.

정상회담의 합의에 힘입어 서울과 평양에서 장관급 회담이 번갈아 열렸고 8ㆍ15 이산가족 교환상봉이 이뤄졌다.

분단의 상처를 온몸으로 부둥켜 않은채 흐느끼는 이산가족들의 절절한 사연은 한반도 전체를 눈물바다로 만들었고 단숨에 55년의 단절을 뛰어 넘을 태세였다.

북한의 김용순 특사가 추석 선물로 북한산 송이버섯을 가지고 김포공항에 날아오고, 남북 국방장관 회담에 참석한 북한 대표들이 청와대에서 김 대통령에게 거수 경례를 했다.

남북간에 존재했던 터부와 고정관념 등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듯 했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가 너무 서둔다는 지적과 함께 속도 조절론이 나오고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이냐를 놓고 남남갈등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햇볕정책을 이해하거나 지지하는 사람들은 북한을 물심양면으로 포용하는데 찬성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인사들은 엄격한 상호주의 적용을 주장했고, 이들에게 김 위원장과 북한 정권은 철저한 검증 대상이었다.

대북지원을 둘러싸고 퍼주기 논란이 일었고, 남한 사회의 고질인 지역감정과 호ㆍ불호가 확연하게 갈리는 김 대통령에 대한 지지분포는 이를 증폭 시켰다.

어느 분야보다 국론 통일이 필요한 남북관계가 오히려 국론분열의 계기가 돼버린 셈이다.

김 대통령은 정상회담의 성과를 확실히 하기 위해 김 위원장의 서울답방을 서둘렀고, 이는 비판론자들에게 조급증으로 비쳤다.

이런 가운데 김 위원장과 북한은 합의사항과 약속을 슬금슬금 비켜 나가기 시작했다. 경의선 철도 복원을 위한 북측 공사가 미뤄지고, 김용순 특사가 약속했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서울방문도 불발에 그쳤다.

남한에서는 김 위원장의 답방에 반대하는 공개 목소리가 나왔고, 북한에 준 60만톤 식량이 과연 적절한 것 이었느냐 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민의 정부가 너무 서둘지 않고, 북한이 남한 정부의 입지를 조금이라도 생각해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정상회담을 뒷받침 할 조치들이 질척거리고 있는 사이에 메가톤급 외생변수가 발생했다. 미국 대통령선거다. 임기 말의 클린턴 정부는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평양에 보내 클린턴의 방북을 추진했다.

북한의 조명록 국방위 부위원장이 인민군복차림으로 백악관에 들어가 빌 클린턴 대통령을 면담했고, 김 위원장과 올브라이트 장관은 미사일문제 등 북미관계 개선에 가로놓인 장애물을 제거하는데 거의 성공했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공화당 정부의 출현은 민주당이 깔아놓은 초석을 원점으로 돌려 버렸다.

부시 대통령은 김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과 북한지도부에 대해 회의감(Skepticism) 을 갖고 있다고 스스럼 없이 말했고, 연두교서에서는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 국가로 표현했다.

우리가 국론통일을 하지 못하고 북한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이에 미국이라는 암초가 등장해버린 것이다. 남북 관계가 정상회담 수준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지난 2년간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남한은 국론을 통일해야 하고 북한은 약속을 지켜야 한다. 정부는 서둘지 말아야 하며 정치권은 남북문제를 정쟁에 끌어 들여서는 안된다.

지극히 당연한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는 한 남북관계는 돌파구를 찾기 힘들 것 이다.

이병규 논설위원 기자

veroic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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