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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붉은 6월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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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붉은 6월 예찬

입력
2002.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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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파상의 단편소설 ‘비계 덩어리’는 뚱뚱한 여주인공의 별명이기도 하다.그녀 직업은 매춘부. 보불전쟁에서 프랑스가 패한 겨울날 귀족과 기업인, 부유한 상인, 수녀 등이 대형 마차를 빌려 피란을 떠난다.

모파상은 위선적인 상류층 인간 군상과, 어쩌다가 거기에 편승하게 된 창녀가 절박한 상황에서 벌이는 행동과 인간성을 예리하게 대비시킨다.

피란 행로를 따라 ‘애국심’과 ‘인간미’라는 주제가 서서히 부각된다.

여인은 프랑스 군인을 도우려다 쫓기게 되자 뒤늦게 마차에 합류한다. 모두 그녀를 멸시하지만 그녀만 음식을 지니고 온 것이 드러나면서 친절한 태도를 보인다.

도중 검문하던 프러시아 장교가 그녀를 알아보고 동숙을 요구하며,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며칠 간 일행을 보내주지 않는다.

완강하게 저항하던 그녀는 일행의 끈질긴 설득에 못 이겨 적군 장교숙소로 간다. 다음 날 일행은 ‘성스러운 조국의 사랑이여…’라는 국가를 부르면서 길을 떠나는데, ‘비계 덩어리’만 종일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조국은 무엇이며, 애국심은 어디서 샘 솟는 것일까를 돌아보게 하는 월드컵의 날이 계속되고 있다. 대체 어떤 거대한 힘이 우리 국민들로 하여금 붉은 옷을 입고 경기장과 도시 광장으로 모여들어 뜨거운 함성을 토하게 하는 것일까.

거대한 집단 에너지를 보면, 대체로 정치인은 말로 애국을 하고 ‘비계 덩어리’ 같은 보통 사람은 행동으로 애국을 하는 것 같다. 붉은 색은 ‘일편단심’, 애국심의 상징이다.

장삼이사가 모여 이룬 거대한 붉은 색이 감동적이다.

“애국심이란 당신이 이 나라에 태어났기 때문에, 이 나라가 다른 어떤 나라보다 고귀하고 우월하다고 믿는 당신의 신앙”이라고 영국작가 버나드 쇼는 정의한다.

애국심이 맹목적이라는 그의 정의는 너무 차갑다. 사랑은 가족 단위에서 마을로, 국가로, 인류 전체로 번져 나가는 것이 아닌가.

수십만 인파가 자발적으로 운집하여 한 마음으로 응원하는 바탕에는 개인보다 국가를 생각하는 대의가 있고, 그로 인한 순도 높은 기쁨이 있다.

강대국과 약소국이, 또 선진국과 저개발국이 육체만으로 대결하는 월드컵 축구는 그 점만으로도 평화적이고 공평해 보인다. 축구 강국 외에는 미국도 러시아도 두렵지 않다.

모두 대등하게 싸워서 이겨야 할 상대 팀일 뿐이다. 애석하게도 지난번 월드컵 우승국에서 16강 탈락국으로 급추락한 프랑스의 눈물이 있고, 첫 출전하여 과거 식민 종주국이었던 프랑스를 꺾고 16강에 조기 도착한 세네갈의 신화도 있다. 이변이 매력이 되어 축구의 생명력을 유지시킨다. 하여 작은 축구공 앞에서 모두 겸허해져야 한다.

월드컵은 우리의 생각을 많이 변화시키고 있다. 우리의 애국심을 키워주었을 뿐 아니라, 우리를 여러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했다.

도전이 금기시 됐던 이념적 허구와 종교적 도그마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고정관념과 허위의식, 편견이 부서져 나가는 역사적 체험을 하고 있다.

응원하는 동안 우리는 ‘붉은 색’과 ‘악마’에 대한 두려움을 잊었다. 축구 덕분에 음습한 시절 정치가 강요한 ‘붉은 색’ 콤플렉스를 벗어나는 듯하다.

유럽식 축구에서 우리가 많이 배웠듯이, 정치에서도 유럽처럼 ‘빨갱이’ 콤플렉스를 벗어나 이념의 자유로운 그라운드로 나아가야 한다. ‘악마’ 또한 불안의 심연으로 잡아 끄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동화적 존재처럼 인간화하고 말았다.

월드컵은 우리에게 문화적 성인식이자, 열린 의식의 페레스트로이카다. 히딩크 감독을 사랑하게 된 우리는 외국인 혐오에서도 멀찍이 벗어난다.

침략으로 점철된 역사를 지닌 우리는 이제 자폐적 성격을 버린다. 월드컵을 통해 우리는 타인과 더불어 축제를 즐기는, 긍정적 에너지가 충만한 겨레로서 원형을 찾아가고 있다.

박래부 논설위원기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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