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그득하게 들어차 있는 호수가 아니다. 그렇다고 맨 땅도 아니다. 땅과 호수의 중간 형태이다.푹 젖은 땅이다. 늪이라 부른다. 우포늪(경남 창녕군)은 물과 땅의 중간자적 특성을 잘 말해 주는 한반도에서 몇 남지 않은 천연 늪지이다.
그 특성의 으뜸되는 주제는 바로 생명이다. 우포늪은 생명의 보고이다. 원시적 생태계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생명의 경이를 직접 목격하고 싶다면, 우포늪으로 가자.
우포늪은 넓다. 약 71만 평. 대합면, 이방면, 유어면, 대지면 등 창녕군의 4개 면에 걸쳐 펼쳐져 있다. 생성 시기는 약 1억 년전.
낙동강으로 흘러 들던 작은 하천 토평천이 땅에 막히면서 넓게 퍼져 늪을 형성했다.
홍수가 나면 낙동강의 물이 역류하면서 퇴적물을 쌓아 자연제방을 만들었고 그 안쪽으로 물의 일부가 남아 지금의 우포늪이 된 것이다.
우포는 모두 4개의 커다란 습지로 형성돼 있다. 우포, 목포, 사지포, 쪽지벌이라 부른다. 우포 옆으로 산이 있다.
소의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우항산이다. 우황산의 소가 우물에 머리를 대고 물을 마시는 형상이라고 해서 이름이 우포(牛浦)이다.
목포는 나무가 많이 떠내려왔다고 해서, 사지포는 모래땅이어서 이름이 붙었다. 쪽지벌은 아주 작은 늪이라는 뜻이다.
원래 이 지역에는 가항늪, 팔락늪 등 10여 개의 늪이 더 있었다. 무분별한 개발과 농지의 확장으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우포에도 한 때 개발의 바람이 거세게 불었지만 1997년 생태계 보호지역으로 지정됐고, 이듬 해 국제습지보호조약인 람사조약에 의해 ‘촉수엄금’의 성지가 되었다.
늪의 역할은 크게 세 가지. 첫째는 홍수조절기능이다. 비가 많이 오면 늪은 물을 가둔다. 우포늪도 평소 1m 안팎의 수심을 유지하다가 장마철이 되면 5m까지 깊어진다.
그만큼의 물을 가둬 하류의 범람을 막는다는 의미이다. 둘째는 수질정화기능이다. 늪에 촘촘하게 들어찬 수생식물들이 그 역할을 한다.
낙엽이나 썩은 유기물에 의해 생기는 부영양화물질인 질산염과 인산염을 수생식물이 흡수한다. 거대한 정수기인 셈이다.
미국에서 늪의 정수기능을 돈으로 환산해 보았는데 연간 1㏊ 당 약 40만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은 생명을 잉태하고 보호하는 어머니의 기능이다. 땅이 비옥하고 물이 많은 곳이어서 식물이 잘 자란다.
식물이 무성한 곳에는 동물도 많은 법. 자연의 법칙만이 지배하는 그 곳에서 다양한 동식물이 자연 그대로의 생활방식으로 살아간다.
그 중에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것도 많다. 그래서 늪은 생물의 종다양성을 보존하는 보석함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요즘 생물유전자원의 확보는 국가의 경쟁력으로 꼽힌다. 각종 식량과 약품이 야생동식물로부터 나온다.
세계적으로 야생동식물에서 생산되는 약품은 연간 400억 달러에 이를 정도이다.
우포늪에는 모두 1,772종의 생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식물 435종, 담수조류 469종, 곤충류 588종, 척추동물 263종, 기타 17종이다.
조사가 더 정밀하게 진행된다면 그 수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 많은 종류의 동식물이 가장 활개를 치며 번성하는 시기는 바로 지금부터이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9월말까지 온갖 생명들이 모습과 소리를 뽐낸다.
얕은 물에서는 부들, 갈대, 물억새, 세모고랭이 등이 무성해지고 물 위에는 가시연, 마름, 자라풀, 개구리밥이 파랗게 깔린다.
특히 가시연은 우리 학계에서 가장 잎이 큰 식물로 보고되고 있다. 큰 것은 지름이 2m에 이르기도 한다.
푸른 풀이 덮인 물 속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물방개, 물땡땡이, 물장군, 장구애비 등 수서곤충들이 분주히 오간다. 붕어, 잉어, 가물치 등 전통적인 우리 민물 어류들의 놀이터이기도 하다.
새들의 천국이기도 하다. 붙박이새 뿐 아니라 철새들도 쉽게 볼 수 있다. 여름이면 해오라기, 황로, 뜸부기, 꼬마물떼새 등이 찾아온다. 늪을 잠시 떠나 마을 길에서 활보하는 왜가리도 볼 수 있다.
우포늪은 우리에게 생명의 경이만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수면같이 평평한 드넓은 땅. 쉽게 접할 수 있는 풍광이 아니다.
평화롭다. 바라보면서 세월을 생각한다. 1억 년의 평화. 저 자연을 인간이 어찌 범접하겠는가. 두려움 섞인 희열이 솟아오른다.
▽부곡온천·화왕산도 가볼만
창녕은 관광 명소이기도 하다. 우포늪을 둘러봤다면 휴식과 산행 등 구미에 맞는 여행을 보너스로 즐길 수 있다.
우선 꼽을 수 있는 곳이 부곡온천이다. 부곡은 땅이름이 가마솥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국여지승람에 온천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어 온정이라 부르기도 했다. 기록에만 자취가 남아있던 온천이 다시 발견된 때는 1973년.
현 부곡온탕의 주인인 신현택씨에 의해서다. 최고 수온 섭씨 78도의 온천수가 하루 6,000톤 정도 솟는다.
온천수는 유황천. 규소, 염소, 칼슘, 철분 등 20여 종의 무기질을 함유하고 있어 호흡질환, 피부질환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대규모의 대중탕과 대공연장, 실내ㆍ외 수영장, 식물원을 갖춘 부곡하와이를 비롯해 각종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
산을 좋아한다면 화왕산에 올라봄직하다. 화왕산은 겉으로 보기에는 겁이 날 정도로 우뚝하다. 그러나 높이는 해발 756m이다.
봄이면 진달래와 철쭉, 가을이면 억새가 유명한 산이다. 여름에는 녹음이 짙은 계곡이 볼만하다. 산행시간은 3시간 남짓. 조금 험한 곳이 있다.
‘환장고개’라고 이름이 붙었다. 고개가 끝나는 곳이 정상이다. 화왕산성이 있고 산성이 밋밋한 분지를 감싸고 있다. 가을이면 온통 억새로 뒤덮이는 정상분지이다.
구룡산 병풍바위 아래에 있는 관록사는 신라시대에 지어진 고찰이다. 보물 제212호인 대웅전을 비롯해 4점의 보물이 있다.
신라의 원효대사가 이 곳에서 1,000여 명의 제자에게 화엄경을 설법했다고 한다. 주변의 옥천계곡에서 더위를 피할 수 있다. 창녕군청 문화공보실 (055)530-2231
▽우포→목포→사지포順 들러야 편해
우포늪은 넓다. 그리고 4개의 늪지를 연결하는 교통로가 복잡하다. 만족할만한 탐방을 하려면 약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모두 네 곳의 진입로가 있다. ①~④ 순으로 탐방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우포늪을 시계방향으로 돌며 탐방하는 방법이다.
① 구마고속도로 창녕IC에서 나와 우회전, 24호 국도를 따라 약 5.3㎞를 달리면 창녕환경연합 생태학습원(055-532-7856)이 나타난다.
옛 회룡초등학교 건물이다. 이 곳에서 우포늪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단체일 경우 미리 연락을 하면 시청각교육과 생태답사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생태학습원 우측으로 우포늪 입구가 있다. 약 1.5㎞ 진입하면 대형주차장. 주차장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우포늪에 닿는다.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 올라 대략적인 늪의 모습을 파악하고 본격적인 탐방에 나선다.
② 다시 24호 국도로 나와 우회전, 합천호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늪을 멀리서 우회하기 때문에 멀다.
약 20분을 달리면 24호 국도는 합천호 쪽으로 좌회전하고 직진방향으로 1080호 지방도로가 나온다.
지방도로를 타고 약 10분을 더 달리면 오른쪽으로 우포늪 입구가 나온다. 목포늪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③ 목포늪에서 다시 나와 우회전, 1080호 지방도로를 따라 약 1㎞ 정도 진행하면 다시 우포늪 입구 표지판이 있다.
창녕황견연합이 조성한 생태체험장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우포늪의 생태계를 작은 정원에 모아놓았다. 한눈에 우포늪의 생명을 조망할 수 있다.
④ 다시 길을 나와 우회전, 약 2㎞를 가면 다시 진입로 표지판이 나온다. 사지포로 들어가는 길이다. 대형버스는 진입이 불가능하다.
▽가는 길
수도권에서 출발한다면 경부고속도로를 탔다가 대구에서 구마고속도로로 길을 바꿔 창녕IC에서 빠지면 된다.
중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해 원주까지 가서 중앙고속도로를 바꿔 타면 대구에 닿을 수 있다.
요즘은 이 길이 정체가 없어 많이 이용되고 있다. 서울고속터미널에서 오전 9시 4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창녕행 고속버스가 출발한다.
창녕시외버스터미널에서 유어, 적교행 버스가 수시로 출발한다. 15~20분이면 우포생태학습원(옛 회룡초등학교)에 닿는다.
▽쉴 곳
우포늪 인근에는 숙박시설이 전무하다.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인근 부곡온천 지역에 시설이 훌륭한 대형 숙박시설이 밀집해 있다.
부곡하와이 관광호텔(055-536-6331), 로얄관광호텔(536-6661), 레이크힐스호텔(536-5181), 파크관광호텔(536-6311), 가든관광호텔(536-5771) 등이 관광호텔급 숙박시설이다.
일성부곡콘도(536-9870)는 가족 단위 여행객에게 적당하다. 그 밖에 현대호텔(536-5131), 원탕고온호텔(536-5655) 등 일반호텔과 장급 여관이 널려있다.
▽먹을 것
창녕 지방에는 지역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먹거리를 찾기 힘들다. 대신 부곡온천 등에 힘입어 여행객의 입맛을 유혹하는 ‘관광지 음식’을 잘 하는 식당이 더러 있다.
관룡사 입구에 위치한 고향민속가든(055-521-3010)은 쌈밥으로 유명한 집. 직접 재배한 쌈과 경상도 특유의 된장쌈장이 맛있다.
부곡온천 인근의 공원숫불갈비(536-6555)는 창녕에서 이름난 한우구이집. 즉석에서 반죽해 면을 뽑는 냉면도 맛있다.
부곡의 한성호텔이 직영하는 부곡한성가든(536-5131)에서는 한정식을 맛볼 수 있다.
창녕=글ㆍ사진 권오현기자
koh@hk.co.kr
■길에서 띄우는 편지
우포늪을 처음 본 것은 4년 전 이른 봄이었습니다. 아직 푸른 풀이 돋기 전이라 늪은 거죽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놓고 있었습니다. 툭 터진 벌판에 인적도 거의 없어 적막하기까지 했습니다. 관리자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쩐지 완벽하게 방치된 것 같았습니다. 아주 중요한 곳으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관리가 소홀해서야. 조금 걱정이 됐습니다.
어슬렁거리는데 작은 천막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창녕환경운동연합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었습니다. 마을 아주머니인 듯한 나이 지긋한 분이 계셨습니다. 열심히 쌍안경을 들어 벌판을 응시했습니다. 혹시 누가 철새를 잡지 않나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생업에 종사하면서 순번을 정해 24시간 늪을 감시한다고 했습니다. ‘그래 역시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어.’ 걱정이 없어지고 마음이 흐뭇해졌습니다.
며칠 후 우포늪이 람사조약에 의해 국제적인 중요습지로 지정됐다는 보도를 접했습니다. 1971년 이란의 람사에서 채택된 람사습지조약의 정식명칭은 ‘물새 서식지로서 특히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입니다. 우리는 1997년 101번째로 가입했고 강원 양구 대암산 용늪과 우포가 해당 습지로 지정돼 있습니다. 보호습지로 지정되는 데 우포늪을 지키던 사람들의 역할이 컸다는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지금은 환경부, 내수면 관리당국, 창녕군 등 행정기관이 관리를 책임집니다. 이번에 우포로 향하면서 생각했습니다. 그 때 늪을 지키던 사람들은 어디 갔을까. 그런데 그들은 여전히 우포 곁에 있었습니다. 폐교한 초등학교 건물에 멋진 생태학습원까지 차려놓고 우포를 지키면서 또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다시 흐뭇해졌습니다.
수 년 간 우리 산천을 돌아다니면서 피부로 느끼는 것은 ‘맑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산천은 점점 복원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확산되고 있는 환경에 대한 인식도 한 몫을 했지만 ‘지킴이’의 노력이 컸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특히 생태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민감한 곳에서의 지킴이의 노력은 눈물겹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망치는 자가 있어 지킴이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여전히 씁쓸합니다. 국민 모두가 지킴이가 되는 날, 그래서 더 이상 지킴이가 필요 없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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