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저녁 한국과 폴란드전이 벌어졌던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과 2일 잉글랜드와 스웨덴 경기가 열렸던 일본 사이타마 경기장. 외신들이 주목한 것은 단지 그라운드만이 아니었다.스타디움을 가득 매운 한국과 일본 관중의 손에 어김없이 들려있던 두 물건에 눈을 고정시킬 수밖에 없었다. 휴대폰과 카메라. 외국인에게는 비슷한 생김새, 비슷한 행동양식을 가졌음직한 아시아 두 나라의 현 주소를 극명하게 대비시키는 장면이었다.
다시 사이타마 경기장. 전반 24분 데이비드 베컴이 선제 골로 이어지는 코너 킥을 차는 순간 스타디움은 갑자기 불꽃 축제를 벌이는 듯 했다. 1만여 개가 훨씬 넘는 카메라 플래시가 일제히 터졌던 것이다. 이 경기를 취재했던 BBC방송의 축구전문기자 로브 보넷은 “지금까지 지켜본 수많은 경기 취재 중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고 보도했다.
그는 스웨덴 골키퍼가 이 불빛에 순간적으로 정신이 혼란해졌을 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BBC방송은 사이타마 경기장은 물론 월드컵 경기장이 열리는 대부분의 일본 경기장에서 같은 장면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한국 경기장은 달랐다. 전반 26분 황선홍이 이을용의 패스를 받아 절묘한 발리슛을 성공시키자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을 온통 붉게 물들였던 관중들은 카메라 대신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친구나 가족들에게 첫골 소식은 물론 관중들의 뜨거운 함성 소리를 직접 들려주기 위해서였다.
먼저 거의 모든 관중들이 휴대폰에 대고 고함을 지르는 모습에 놀란 워싱턴 포스트는 휴대폰들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소형인데다 각양각색의 모양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두번 놀랐다고 4일 보도했다.
10대 소녀들이 자그만한 동물 인형이 달린 깜찍한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것도 낯선 장면이었다. 실제로 이날 부산 경기장 부근의 통화량은 평소보다 8배(710%) 이상 폭증했다. 길거리 응원전이 펼쳐졌던 광화문 지역도 평소보다 4배 이상 통화량이 늘면서 불통사태까지 벌어졌다.
외신들은 휴대폰과 카메라의 엇갈리는 풍속도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사회 발전상을 조명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3일 한국이 이번 월드컵을 첨단 기술력을 과시하는 기회로 삼고 있으며 이 부문에서 라이벌인 일본을 상당히 앞섰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외신들은 일본 카메라 문화에 또 다른 이면이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는다. BBC방송은 자기가 그 자리에 왔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는 일본 관중들의 말을 전했다. 유난히 기록을 남기기를 좋아하는 일본인 특유의 문화가 배어있다는 설명이다. BBC방송은 또 지하철 등 깨끗하고 조용한 일본 대중교통 문화에 대해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지하철에 관한 한 우리나라가 외신들을 또 한번 놀라게 하는 진풍경이 있다. 로이터통신은 7일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한국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 경기를 지켜보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고 8일 보도했다.
로이터는 첨단 기술로 무장한 깨끗한 화면과 사운드 시스템이 축구의 묘미를 지하철 안과 길거리까지 생생하게 전달하면서 월드컵 열기를 고조시키고 있다고 부러워했다.
김병주기자
b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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