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6ㆍ13 지방선거의 최대 분수령인 서울시장 선거를 목전에 둔 서울 시민의 마음은 아직 복잡하다. 강남구에서 치과의사를 하는 정모씨(57세)는 “김대중 대통령 아들 비리 때문에 민주당 후보를 선택하기가 선뜻 내키지 않는다”며 “민주당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포구에 있는 소규모 출판사 직원인 오모씨(38세ㆍ여)는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하면 이회창 대통령후보에게 유리해질 것 같아 그러기 싫다”며 “개혁과 관련해 한나라당이 보여준 것이 뭐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반(反) DJ성’부패심판론이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반면, ‘반 창(昌)성’개혁 지속론의 기류도 만만치 않은 세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처럼 서울에서는 이번 선거를 대선후보 구도와 연관 지어 생각하는 경향이 보다 뚜렷하다. 민주당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 지지층, 한나라당과 이회창 후보 지지층의 표 결집도도 변수로 꼽힌다.
“말을 거칠게 하는 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국정이 불안해 질 것(송파구 이모씨ㆍ53세ㆍ자영업)”이라고 말하는 이 후보 지지층이 “호화빌라, 원정출산 등 귀족 생활을 해온 이 후보가 서민 행세를 하는 것을 보면 역겹다(양천구 고모씨ㆍ41세ㆍ노점상)”고 하는 노 후보 지지층보다 현재로선 결속력이 높다는 것이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물론 TV토론과 정당유세 등을 통해 민주당 김민석(金民錫) 후보와 한나라당 이명박(李明博) 후보 사이의 인물대결도 선거의 기본축으로 자리잡았다. 서울 시민들은 대체로 부패성, 도덕성, 경험과 경륜, 세대교체 및 참신성, 자질과 능력 등을 놓고 두 후보를 비교한다.
은평구에 사는 장모씨(68세ㆍ여)는 “나이 어린 사람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김 후보를 겨냥했다. 그는 이어 “60대 초반의 이 후보는 대기업 사장 출신으로 경험도 많고 경제도 알기 때문에 자격이 있으며 주변에 나이 든 사람들은 대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이 후보 지지를 분명히 했다.
반면 서대문구에 살면서 아이들을 같은 유치원에 보내는 30~40대 주부 6명은 시장선거가 화제가 되자 이 후보에 대해 “돈 냄새가 많이 나는 것 같다”는 말에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리에서는 “이 후보는 월급 사장이면서 170억원이 넘는 막대한 재산을 모으고도 건강보험료는 적게 냈다는데 그가 시장이 되면 서울시가 다시 복마전이 되는 것 아니냐”는 뼈 있는 얘기들도 쏟아졌다.
20~30대에서는 김 후보에 대한 지지가, 50~60대 중에는 이 후보 지지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분석은 현장에서 대체로 확인된다. 그러나 40대의 경우는 독특하다. 여의도 대기업에 근무하는 40대 후반의 심모씨는 “우리 나이면 벌써 회사에서 퇴출 압력을 많이 받는데 후배들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곤혹스러워 했다.
반면 여의도 금융가에서 일하는 40대 전반의 김모씨는 “1987년 6ㆍ10 항쟁 때 넥타이 부대로 참여했던 우리가 적극적으로 변화를 선도해야지 수구적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세대교체를 지지했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20,30대 투표울이 최대변수
서울시장 선거에서 20~30대층의 투표율이 승부의 중요 변수라는 데 이견이 없는 것 같다. 20~30대에서는 민주당 김민석 후보 지지가 강세여서 이들의 투표율이 상대적으로 낮으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유리해진다.
1995년 제1회 지방선거 때 전국 평균 투표율이 68.4%인 상황에서 20대는 52.8%, 30대는 68.1% 였다. 1998년 제2회 지방선거 때에는 평균 투표율 자체가 52.7%로 낮아졌지만 20대, 30대 투표율은 각각 33.9%, 46.2%로 낙폭이 훨씬 컸다.
이번엔 월드컵 열기에 파묻혀 20~30대 투표율이 더 낮아질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투표율을 둘러싼 두 후보간의 신경전도 치열하다. 이 후보측이 “선거날인 13일 투표율을 높이려면 자동차 홀ㆍ짝제를 시행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 반면 김 후보측은 “홀ㆍ짝제 중단은 차를 갖고 놀러 가라는 것으로 오히려 젊은 층의 투표율을 낮추려는 술책”이라고 반박한다.
김 후보측 이해찬(李海瓚) 선대본부장은 “축구를 보기 위해 서울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투표장에 나올 것”이라며 월드컵이 오히려 호재일 수 있다고 본다. 선관위측도 “기득권 세력을 비판하면서 선거에 불참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투표하고 축구 보자’등의 캠페인으로 축구 열기를 투표 참여로 연결시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경기
서울에서 전철을 타고 1시간도 채 안 걸려 도착한 수원역 앞은 인근에 월드컵 경기장이 있어서인지 여느 때보다 활기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9일 수원역 앞 지하상가와 역전시장에서 만난 상인 10여명 중 절반 가량은 “월드컵에 관심이 많지만 경기지사선거에는 별다른 얘기들이 없다”며 무관심을 드러냈다. 여성복 가게를 경영하는 이모(36) 씨는 “투표할 생각이지만 솔직히 누가 지사 후보로 나왔는지 잘 모른다”고 말했다.
찍을 후보를 정한 사람들의 반응은 조금씩 달랐다. 역전시장에서 남성복 가게를 경영하는 김성준(金聖俊ㆍ41)씨는 “충청 출신으로서 지난 대선 때는 DJ를 찍었지만 이번에는 한나라당 손학규 후보를 선호한다. 권력층 비리 때문에 이번에는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많다”고 말했다.
의류 판매를 하는 송모(38ㆍ여)씨는 “투표하러 가면 경제적 식견이 있는 민주당 후보를 찍게 될 것 같다. 김대중 대통령을 찍은 사람으로서 대통령 아들 비리 사건이 터져 안타깝다”고 말했다.
서울처럼 8도 사람이 어우러져 사는 경기도의 표심은 시ㆍ군 별로 편차를 보였다. 수원, 분당 등은 손 후보가 다소 우세한 기류였으나 안산, 의정부 등에선 진 후보가 약간 강세였다. 경기도 전체적으로는 한나라당 손학규(孫鶴圭) 후보와 민주당 진념(陳稔) 후보의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았다.
사업을 하는 최모(48ㆍ안산)씨는 “대통령 아들 비리가 태풍처럼 큰 영향을 주고 있지만 안산에선 민주당이 약간 우세하다. 경제부총리를 역임한 임창열(林昌烈) 지사가 경기 경제를 활성화했기 때문에 경제부총리를 지낸 진념 후보에 대한 기대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공무원 박모(53ㆍ안산)씨는 “관료 출신이 도지사를 맡는 것보다는 정치인 출신이 도지사를 맡는 게 오히려 활력을 주는 것 같다. 정치인은 추진력도 강하고 외풍을 잘 막아준다”고 다른 평가를 했다.
의정부에 사는 주부 고모(45)씨는 “동네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진 후보 지지자가 약간 많은 것 같다. 진 후보가 장관 등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는 게 부각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업을 하는 이모(49ㆍ파주)씨는 “진 후보도 좋은 사람인데 민주당이 싫어 손 후보를 찍겠다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말했다.
당초 젊은층에서는 진 후보가 우세였고, 50대 이상에서는 손 후보가 강세였으나 세대별 지지도 격차 현상은 조금씩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한신대생 이모(23)씨는 “친구들이 월드컵에 관심을 갖지만 지사 선거에는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
투표를 한다면 개혁성향의 손 후보를 찍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시흥에서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손모(37)씨는 “경제를 잘 아는 사람이 도지사가 돼야 중소기업 지원이 잘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양에 사는 이모(45)씨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민주당 노무현 후보 모두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투표하지 않거나 제3의 지사 후보를 찍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손 후보와 진 후보는 수도권 규제 정비, 하이닉스 처리, 고교 평준화 등의 정책을 놓고 열띤 논란을 벌이고 있으나 이 같은 구체적 쟁점을 아는 유권자는 별로 없었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민.자 공조의 힘 "클것" "미미"
민주당과 자민련은 수도권과 충청권의 지방선거에서 공조를 하고 있다. 양당 공조는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어느 정도의 위력을 보여줄까. 1998년 경기지사 선거 때는 DJP공조가 상당한 파괴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번에는 민-자 공조의 효과가 미미하다는 게 지배적 평가이다. 충청 출신인 김모(41)씨는 “내 주변에 있는 충청 출신 가운데 6~7할 가량이 한나라당으로 기울고 있다. 권력층 비리 사건이 터진 데다 민주당 대선후보도 충청권 출신이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반면 공무원 한모(37ㆍ평택)씨는 “줄곧 자민련을 지지해온 장년층, 노년층 중 일부는 민_자 공조를 의식해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며 공조의 부분적 효과를 인정했다. 현지 분위기를 잘 아는 전직 언론인은 “경기도민 가운데 민주당과 자민련의 공조 사실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에 공조의 영향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두 후보가 오차 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이는 상황에서는 JP를 의식해 민주당을 찍는 사람이 일부 있다는 게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반면 한나라당 관계자는 “경기도에서 자민련의 영향력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에 민-자 공조는 전혀 판세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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