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클리드의 창 : 기하학 이야기' /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지음수학책을 읽으면서 박장대소하다니!
수학 그림자만 봐도 머리가 띵 해지는 수학공포증 환자로선 꿈꾸기 힘든 은총을 이 책이 베푼다.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도 있지만, 그런 장애물조차 끝까지 읽고 말겠다는 투지를 자극한다. 그만큼 재미있다.
‘유클리드의 창 : 기하학 이야기’는 어렵고 골치 아파 보이는 기하학을 보통 사람들의 지식으로 돌려주는 책이다. 고대 그리스인의 평행선 개념부터 최근의 고차원 공간개념에 이르는 기하학의 역사를 전문용어나 수식을 거의 쓰지 않고도 솜씨 좋게 요리했다.
기하학 역사상 주요 혁명과 선구자들, 그리고 그들 배후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재기발랄하고 톡 쏘는 유머로 양념을 쳐서 입맛을 돋군다.
총 5장으로 이뤄진 이 책의 각 장을 차지하는 주인공은 유클리드, 데카르트, 가우스, 아인슈타인, 그리고 위튼이다.
이들 5명의 영웅을 중심으로 기하학의 역사를 정리하고 그 과정에서 선구자들이 겪었던 고난과 환희, 그들이 개척한 신천지에서 일어난 놀라운 사건들을 소개한다.
특히 이천여 년 동안 진리로 여겨져온 유클리드 기하학의 공리를 무너뜨린 가우스, 공간과 시간 그리고 물질과 에너지가 하나로 얽혀있음을 밝혀낸 아인슈타인, 현대 물리학의 최전선에서 분투 중인 ‘끈 이론’의 영웅 위튼을 설명한 3~5장은 기하학과 물리학의 환상적인 결합을 보여준다.
평행선이 만날 수 있고, 삼각형의 내각이 합이 180도보다 크거나 작을 수 있는 ‘비 클리드 공간’의 발견자 가우스(1777~1855)에 대해 저자 믈라디노프는 이렇게 말한다.
“가우스는 유클리드의 창에서 유리를 떼어내고 휘어진 렌즈로 갈아끼웠다.”
가우스가 발견한 ‘휘어진 공간’의 개념은 끈 이론의 2차 혁명으로 불리는 위튼의 ‘M 이론’(1995년)에 이르면 10차원, 11차원의 공간 개념으로 발전한다.
2차원 평면의 점 선 면밖에 모르는 기하학 초보자들에게 가우스에서 위튼으로 이어지는 이 놀라운 지적 성취는 현기증을 일으킨다.
휘어진 공간이나 상대성이론, M이론을 충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렇더라도 공간과 사물과 시간을 바라보는 창으로서 기하학이 펼쳐보이는 신천지를 감지할 수는 있다.
그것이 우리의 사고 방식과 존재론에 일으킬 격랑을 짐작해보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이 책을 읽고 그런 즐거움을 누리는 데 필요한 덕목은 왕성한 호기심과 약간의 참을성이다.
지은이 믈로디노프는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교수 출신으로 과학 대중화에 힘써온 저술가. 지난해 뉴욕에서 출간된 것을 물리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과학책을 번역해온 전대호씨가 옮겼다.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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