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6월8일 영화배우 로버트 테일러가 58세로 작고했다. 최근의 보도에 따르면, 이 미국 배우는 무용가 최승희(崔承喜)가 1930년대 말 미국에 체류할 때 그녀와 교유하며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로버트 테일러의 출연작 가운데 영화팬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머빈 르로이 감독의 ‘애수(哀愁)’(1940: 원제 ‘워털루 브리지’)일 것이다. 로버트 셔우드의 희곡 ‘워털루 브리지’를 원작으로 삼은 이 작품에서 로버트 테일러는 비비안 리와 공연했다.
셔우드의 원작 희곡은 1931년 제임스 웨일 감독이 먼저 영화화했지만 평단의 반응과 흥행에서 모두 쓴맛을 보았다. 르로이 감독은 원작에 짙게 배어있던 반전주의 메시지를 대폭 줄이고 두 주인공의 비극적 사랑에 초점을 맞춰 애정 멜로물의 고전을 만들어냈다.
영화 ‘애수’에서 런던의 워털루 다리는 20세기의 두 세계대전 사이에 걸려 있다. 제2차 대전이 터진 직후인 1939년 9월 그 다리 위에서 중년의 영국군 대령 로이(로버트 테일러)가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한다.
그 회상 속에는 제1차 대전 중에 런던으로 잠시 휴가 나와 워털루 다리 위를 산책하는 젊은 로이 대위가 있다.
회상 속의 또 다른 주인공은 젊고 아름다운 무용수 마이라(비비안 리)다. 공습경보의 아수라장 속에서 알게 된 두 사람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사랑을 나누지만, 마이라는 결국 매춘부가 돼 삶을 비참하게 마감한다.
원작의 반전주의를 덜어냈다고는 해도, 영화 속에서 이들의 사랑을 파멸로 이끄는 것은 결국 전쟁이다. 그들의 결혼을 막은 것도, 마이라를 거리로 내몬 것도 전쟁이다. 로이와 마이라가 춤출 때 흘러나오는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은 사랑의 비극적 결말을 예고하고 있는 듯해 더 구슬프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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