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밤의 꿈 같은 승리 다음날 사람들의 얼굴에는 흥분과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우리가 하면 얼마나 하겠나 하는 자조 섞인 마음을 말끔히 비워냈기 때문일 것이다. 밤거리를 질주하면서 경적을 울려대고 구호를 외치는 가운데 지나치지 않을 만큼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앞으로 세계에 대한 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 있게 살아가는 ‘월드컵 세대’라는 말이 나타나지 않을까 예상되기도 한다.
월드컵은 오늘날 단순한 축구경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TV나 인터넷이 발달함으로써 월드컵을 개최하는 나라의 문화에 대한 정보는 실시간으로, 또 영상으로 생생하게 전달된다. 이 기회를 잘 활용하면 그 어떤 외교적 노력보다 나을지 모른다.
그 동안 우리는 우리 문화를 알리는 일을 적절히 해내지 못했다. 우리 문화를 과거에는 중국의 아류로, 현재는 일본의 아류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세계의 유명 박물관의 한국전시실이 중국이나 일본, 인도에 비해 턱없이 좁은 이유는 거기에 있다. 물론 그것은 한국인이 볼 때 부당한 일이지만, 거꾸로 우리 스스로가 그 동안 문화적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하지 못한 점을 반성할 필요도 있다.
한국에 대한 오해 가운데 하나인 조선왕조가 외부 세계에 대해 배타적인 ‘은자의 나라’였고 쇄국정책을 펴던 나라였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은자의 나라'라는 말은 1870년대 초반 일본에서 활동하였던 그리피스(W. Griffith)가 1882년에 처음 사용한 용어였는데, 흥미로운 것은 그 자신은 한번도 조선 땅을 밟아 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당시 일본인들로부터 들었던 조선에 관한 부정적 정보와 서양인들이 썼던 책을 근거로 쓰여진 이 책은 불행히도 서양인들의 한국에 대한 가장 영향력 있는 지침서의 역할을 하였다.
더 큰 문제는 이 책이 세계에 대해 조선의 이미지를 은자의 나라로 고정시키는데 기여하였다는 점이다. 즉 일본인들에 의해 정보를 입수하여 이 책을 썼던 것을 일본인들이 마치 서양인들이 객관적인 시각에서 쓴 것으로 간주하고 널리 활용하였던 것이다.
쇄국정책이라는 용어 역시 한국인들이 당시 사용했던 용어가 아니며 사실도 아니다. 쇄국이란 일본인이 문호개방 이전의 일본을 다룬 서양인의 책을 번역하면서 개국과 대비되는 것으로 사용했던 용어였다.
이것을 대원군 집정기의 대외정책을 설명하면서 일본인이 활용하였으며 그 후 일반적 용어가 되었다. 한국의 국사 교과서에도 얼마 전까지 그렇게 서술되어 있었고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러나 조선은 결코 숨어있는 나라가 아니었고 무조건 외국인에게 배타적인 나라도 아니었다. 중국과 일본은 물론 동남아 지역과도 계속해서 외교관계를 맺고 있었다.
서양인이라 하여도 고의성이 없었던 경우나 조난한 선원 등에 대해서는 '먼 곳에서 온 사람에게 최대한 관용을 베푼다'는 원칙인 유원지의(柔遠之義)로 처리했다.
구해서 먹여주고 입혀주고 본국에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선박을 지급하거나 의주까지 호송해서 중국 관원들에게 인도하였던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도리를 힘써 다하는 것(盡在我之道)'이 바로 예의의 나라인 조선의 도리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상대방이 호의로 나오면 호의로, 악의로 나오면 악의로 대하는 것이 조선의 원칙이었다. 이러한 원칙은 모든 민족에게 동등하게 적용되었다.
월드컵이 열리는 지금 한국팀의 좋은 성적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상대팀 선수나 응원단에 대한 배려 역시 유원지의에 입각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승리에 급급하여 상대국을 비하하거나 모욕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정에 있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 자발적으로 응원해 주고 정을 느낄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
경제성장을 이룩하더니 가난한 나라 사람에게 거만하게 군림하려 든다는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해 이 기회에 거기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결코 과장하거나 억지로 잘 보이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진솔하게 우리가 가진 만큼 보여 주는 월드컵 기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주진오 상명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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