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개막 직전에 한국일보가 입수한 ‘히딩크의 훈련노트’를 분석, 연재하면서 나는 본능적으로 한국의 첫 승을 직감했다.특히 잉글랜드와의 평가전에서 한국선수들이 그동안 훈련했던 내용대로 경기를 했다는 점에서 첫 승에 대한 기대가 더욱 높아진 게 사실이다.
4일 폴란드와의 경기서 처음 10여분 동안 나는 불안을 금할 수 없었다. 선수들이 그동안 훈련한 내용을 잊어버렸다는 의구심 때문이다.
그러나 선수들은 빨리 평정심을 회복했고, 정상적인 경기를 했다. ‘히딩크 훈련 노트’에서 언급한 대로 경기를 했다는 의미이다.
패스는 쉽고 빠르게, 미드필드에서의 압박은 최대한 강하게, 수비-미드필드-공격의 3선은 일정한 간격으로 유지됐다. 승리의 요인은 이런 것들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것은 11명의 선수들이 각각 삼각형을 이루며 서로 협동적인 관계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그림에서 보듯이 황선홍은 설기현-유상철, 유상철-박지성과 항상 삼각형 모양을 유지했다. 이것은 미드필드나 수비에서도 마찬가지다.
선수들이 항상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3선과 좌우의 간격은 흐뜨러지지 않았다. 볼을 가진 선수를 중심으로 주위 선수들의 접근이 용이했고, 상대 패스를 빨리 차단할 수 있었다.
우리 선수들은 폴란드의 고공공격에 초반에 잠시 몰렸을 뿐 이후에는 거의 공중볼도 점유했다. 위치선정이 그만큼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삼각형 대형의 유지는 강한 체력과 몸싸움을 전제로 한다. 우리 선수들은 여기서도 이겼다.
이러한 형태가 일정하게 유지되면서 우리는 상대의 패스를 방해할 수 있었다. 또 수비의 안정은 물론 공격에서 우위를 점하는 요인이 됐다.
선수들은 지그재그로 움직임이면서 역동작을 많이 사용했다. 공수전환도 빨랐다. 뛰어난 순발력 덕분에 움직임에 변화가 많았다.
상대 수비가 흔들린 것은 이 때문이다. 골 결정력 부족도 없었다. 박지성과 안정환의 결정적인 3차례 슛은 골이나 진배 없었다.
‘히딩크의 훈련노트’에서 이야기했지만 선수들이 이런 대형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포지션별 임무를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각대형의 유지는 이전에도 한국 감독들이 모두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수비까지 흔들림 없이 완벽하게 형태를 유지하기는 치밀한 훈련없이 불가능한 일이다.
생각컨대 히딩크 감독은 선수들의 동기를 유발하는데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 그는 기본적으로 과묵하고 흔들림이 없는 선수를 좋아한다.
열심히 하지 않는 선수는 절대 기용하는 법이 없다. 감격의 월드컵 본선 첫 승.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
/명지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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