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6월5일 미국 소설가 오 헨리가 48세로 작고했다.오 헨리의 본명은 윌리엄 시드니 포터다.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스버러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 양친을 여읜 탓에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약방 점원, 카우보이, 공장 직공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옥살이는 누구나 피하고 싶어하는 비참한 경험이지만 그것이 전화위복이 되는 경우도 있는데, 바로 오 헨리의 경우가 그랬다.
텍사스의 오스틴 은행에서 일하던 시절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그는 아내를 집에 남겨둔 채 남아메리카로 도피했다가 아내가 중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와 체포됐다.
오 헨리는 3년간 복역하면서 작가로서의 자산을 쌓았다.
감옥에서 복역수들로부터 들은 천태만상의 경험은 그의 상상력을 한껏 자극, 출옥 뒤에 그가 해야 할 일은 머리 속에 담긴 온갖 이야기를 타자기로 종이에 옮기는 것 밖에 없었다. 그는 뉴욕으로 이주한 뒤 글쓰기에 몰두했다.
오 헨리가 문단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라틴아메리카 혁명을 소재로 삼은 장편 ‘캐비지와 왕들’을 통해서지만, 그는 본질적으로 단편 작가였다. 등단이 늦은 데다 오래 살지 못해서 그의 작품 활동은 7년 남짓에 그쳤다.
그러나 그 짧은 기간 동안 미국 남부나 뉴욕 뒷골목의 축축한 인정을 담은 단편 300여 편을 썼다. ‘마지막 잎새’ ‘20년 후’ ‘현자의 선물’ 등 불우한 사람들의 애환과 우애를 서늘한 페이소스와 따스한 유머로 버무려낸 오 헨리의 작품들은 그가 죽은 뒤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오 헨리는 문학사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작가다. 그의 작품들에 넘쳐 나는 소시민적 감상주의 때문이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