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러 불럭 주연의 ‘머더 바이 넘버(Murder By Numbers)’는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범죄 스릴러이다.잔혹한 살인범을 뒤쫒는 여형사의 이야기로 이 이야기만 갖고선 똑 부러지게 재미있을만한 구석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대충 고만고만한 영화들 무리에 섞여 있어도 분간하기 어려울 것 같던 이 영화는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매력적인 부분이 적잖다.
여형사 새미로 나온 샌드러 불럭의 캐릭터가 꽤 재미있다.
줄리아 로버츠가 훤칠한 키에 매력적인 웃음으로 미국 최고의 인기 여배우로서 입지를 굳혔다면, 샌드러 불럭은 도시에 나와 성공한 시골 출신 소녀처럼 여전히 촌티를 벗어내지 못한 게 사실이었다.
‘스피드’ ‘당신이 잠든 사이’ ‘미스 에이전트’에서도 늘 비슷했다.
그러나 ‘머더 바이 넘버’에서 그녀는 ‘하이에나’라는 별명을 가진 여형사로 이전 영화들에 비해 푼수끼 대신 냉소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17세에 결혼해 남편에게 살해당할 뻔한 아픈 기억을 가진 새미는 남자를 유혹해 잠자리에 끌어들인 후 가차없이 차버리는 성격.
물론 농담도 슬슬 해가면서. 칼에 난자당한 자국 때문에 잠자리에서도 옷을 벗지 않는 그녀는 자신의 상처를 잠자리를 함께 하는 남자에게도 보이지 않을 만큼 폐쇄적이다.
그러나 직관만은 엄청나게 발달한 그녀는 파트너 샘(벤 채플린)과 캘리포니아 해안가 숲속에 버려진, 교살당한 여자의 살인범을 찾아 나선다.
단서를 추적하던 두 사람은 고교 3년생인 리처드(라이언 고슬링)와 저스틴(마이클 피트)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한다.
그러나 이들이 남겨놓은 단서는 학교 수위를 범인으로 몰고 가고 새미는 덫에 걸린다.
더욱이 두 소년은 엄청난 재력가의 아들들로 상부에서는 수사를 종결하라는 압력이 이어지고, 파트너 샘은 자신이 잡은 학교 수위가 범인이라며 캐시와 다투게 된다.
캐시는 범죄행동심리학까지 읽고 범행을 계획한 지능적인 고교생 살인자들과 아슬아슬한 두뇌싸움을 벌여 나간다.
1924년 미국에서 실제로 일어난 레오폴드와 로엡 사건과 오손 웰슨이 주연한 ‘강박(Compulsion, 1959)’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이 영화는 명석하고, 잘 생기고, 부유하지만 부모의 관심에서 멀어진 불행한 청소년들의 무서운 살인담을 풀어놓는다.
둘은 살인이라는 공통의 ‘작업’을 통해 세상에 자신을 인식시키고, 더불어 동성애적 유대감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두 소년들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털어놓고, 새미로 하여금 이들을 뒤쫓게 하는 방식을 취하는 데, 때문에 긴장감은 매우 떨어지는 편이다.
하지만 여형사를 성적으로, 정신적으로 위협하는 리처드의 캐릭터는 꽤나 밀도있게 그려지고 있다.
‘개와 고양이에 관한 진실’에서 듬직한 연기를 보여준 벤 채플린은 두 소년의 독특한 캐릭터에 밀려 별로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
‘행운의 반’ ‘비포 앤 애프터’를 만든 노장 바벳 슈로더(61)의 영화로 샌드러 불록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는 4월21일 박스오피스 2위로 데뷔한 것이 최고 성적. 6일 개봉. 18세이상.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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