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정 시기인 1947년 6월3일 남조선 과도정부가 수립됐다. 남조선 과도정부는 미군정에서 완전한 민정으로 넘어가기 위한 한국의 과도적 집행부였다.광복 이후 군대를 남한에 진주시킨 미국 정부는 1945년 9월11일 아널드 소장을 군정장관으로 임명해 순수한 군정을 실시하다가, 행정권을 한국인에게 넘겨주는 첫 단계로 1947년 2월1일 안재홍(安在鴻)을 민정 장관으로 임명했다.
이어 55년 전 오늘 군정 법령 제141호를 통해서 북위 38도선 이남 지역의 입법ㆍ사법ㆍ행정 기관을 통틀어 남조선 과도정부라고 부르기로 결정했다. 그러니 정확히 말하면 남조선 과도정부는 미군정청이 이름을 바꾼 것이다.
이 과도적 집행부가 ‘남한 과도정부’가 아니라 ‘남조선 과도정부’라고 불렸다는 것은 그 시대 38선 이남 지역의 한국인들에게도 ‘대한’이나 ‘한국’보다는 ‘조선’이 국호나 민족명으로서 더 익숙했음을 시사한다.
좌우 합작파인 안재홍이 민정장관으로 취임한 데서도 드러나듯, 이 과도 정부는 미국이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 결렬 이후 남한 정세를 안정시키기 위해 거든 좌우합작운동의 열매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과도정부 이전에도 한국인이 군정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군정 초기 단계에는 군정 장관 아래 미국인 부처장과 한국인 부처장을 각각 두고 정무를 운영했고, 1946년부터는 미국인 부처장이 거부권을 지닌 고문으로 물러나 한국인만의 일원적 부처장제가 확립됐다.
그러나 군정청이 과도정부로 이름을 바꾼 뒤에도 실권은 거부권을 지닌 미국인 고문들에게 있었다. 과도정부의 최고 결정 기관인 정무회의에서도 군정 장관 러치의 거듭된 거부권 행사로 민정장관 안재홍은 이내 무력한 존재가 되었다.
과도정부의 행정권은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로 이양됐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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