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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국회의장 선출 자유투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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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국회의장 선출 자유투표로

입력
2002.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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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월드컵 개막식은 정말 멋있었다. 그러나 옥에 티가 있었다. 국회의원들은 국회의장이라도 선출한 후에 개막식에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국회는 의장이 공석이어서 월드컵 참석차 방한 중인 국빈들을 맞을 수가 없다. 나라 망신이 아닌가? 국회의원들이 의장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차기 의장을 뽑지 못했으니 직무유기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국회를 보면 너무나 한심하다. 월드컵 대표팀은 2년 만에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국회는 민주화 이후 14년이 지났으나 아직도 권위주의 시대의 구태의연한 행태를 갖고 있다.

각 당이 원 구성을 여전히 정치적 흥정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가운데 민생법안을 외면한 채 거리에 나가 선거운동에만 몰두하고 있는 국회의원들은 훈련장에서 매일 땀 흘리며 기술과 체력을 연마하고 있는 우리 선수들을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나?

대표팀은 이미 한국 축구의 고질병인 문전처리 미숙을 해결하고 튼튼한 체력과 조직력을 바탕으로 16강 진출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의원들은 여전히 유세장에서 입에 담지 못할 말로 서로 상대방을 비방하는 데만 열을 올리고 있다.

지금과 같은 국회라면 여의도쪽으로 쳐다보기도 싫다는 국민이 많을 것이다.

국민이 입법권을 비롯한 온갖 특권을 국회의원들에게 주었으나 국회가 여러 가지 이유로 제 기능을 못한지 벌써 4개월이 넘었다.

더욱이 국회의장의 경우 2월에는 의장의 당적보유 금지를 국회법에 명시하면서 각 당이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을 도모하였으나 4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의장을 뽑아야 할 때가 오니 국회법 개정 정신은 사라지고 서로 자기 당이 의장자리를 차지해야 한다고 나서고 있다.

한나라당은 제1당이므로, 민주당은 정치 관행에 따라 자기 당이 국회의장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장의 당적 이탈을 허용한 입법 취지를 살리려면 국회의원의 자유투표로 의장을 선출해 국회의 권위를 높여야 한다.

따라서 국회의원들이 정당 보스의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자유투표로 국회의 권위와 자율성을 제고할 수 있는 인물을 의장으로 선출해야 한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곧 국회를 열기로 했다니 천만다행이다. 그런데 국회 소집이 원 구성과 민생법안 처리가 아니라 비리에 연루된 동료 의원들의 구인이나 구속을 막으려는 소위 '방탄국회'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는 하루빨리 자유투표로 의장을 선출하고 원 구성을 마쳐 이런 의혹을 불식시켜 주기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국회의원들이 월드컵 경기장이나 지방선거 유세에 못 나오도록 시민운동이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된다.

신문에서 '식물 국회'라는 용어를 사용하자, 어느 독자는 자기 일에 충실한 '식물'을 왜 우리 국회라는 표현 앞에 붙이느냐고 항의하였다.

식물보다 못한 국회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냉정히 생각해 보면 국회의원만을 비난할 수 없다. 우리 손으로 뽑았기 때문에 한심한 국회에 대해서도 국민이 궁극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월드컵 대표팀이 잘 하거나 잘못하면 전 국민이 흥분하고 질책하면서, 국회는 공전이 장기화되어도 국민은 분노할 줄 모르고 있다.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인 법안은 19개. 예금보험기금 채권 차환발행 동의안, 사채업자의 횡포를 막기 위한 대금업 개정안,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문제 등 시급히 처리해야 할 현안이 산적해 있다.

이런 일을 제쳐놓고 선거유세에 나선 국회의원들에게 유권자들은 "원 구성과 민생법안 처리 후 표를 달라고 하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 후보와 국회의원들이 국회를 버리고 선거유세에 나서는 바람에 지방선거가 지역 현안 해결을 위한 정책대결이 아니라 중앙정치의 연장으로 대선의 전초전이 돼 버렸다.

국회의원들은 하루빨리 국회로 돌아와 원 구성과 시급한 민생관련 법안을 처리한 후 선거판으로 나가야 한다.

김용호 인하대 정외과 교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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