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충격적이군요, 교수님….”월드컵 개막 경기가 끝나자마자 어느 학생이 내게 보낸 문자 메시지다.
정말 그랬다. 충격이라는 말 이외에는 월드컵에 처음 출전한 세네갈이 ‘세계 최강(!)’ 프랑스를 1대 0으로 물리친 그 경기를 표현할 말이 없었다. 역사적인 한일 월드컵이 그 짜릿한 서막을 열던 날, 우리 연구원은 아주 조용했다.
티타임 때 커다란 칠판 앞에서 복잡한 계산을 해가며 진지한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도 여전했다. 원장님께서 우리 나라의 16강 진출 가능성에 대해 나의 ‘전문가적(?) 견해’를 물어 온 것 이외에는 월드컵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나도 조용했다. 지난 며칠간 그야말로 ‘깃발을 날리며’ 미친 듯이 수학 공부에 열중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단 하나.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월드컵을 보기 위해서였다.
이번 월드컵 동안만은 모든 걱정 근심에서 벗어나 오로지 축구만 바라보고 축구만 생각하며 살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던 월드컵은 그 동안 쓰고 있던 논문을 마무리 지을 시간도 주지 않은 채 너무나 빨리, 너무나 충격적인 모습으로 내 곁에 다가와 버렸다.
내가 월드컵 개막을 맞은 곳은 고등과학원(KAIST) 서울캠퍼스의 카페테리아였다.
“우리 나라가 하는 것도 아니잖아?” 하며 세미나를 강행하는 ‘계룡산 수학도사’를 피해 온 연구원 몇 명과 함께 월드컵을 위해 특별히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바라보며 차가운 맥주 한 잔으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애를 썼다.
프랑스와 세네갈의 경기는 격렬하고 빠르게 진행됐다. 전반 22분 트레제게의 슈팅이 골포스트를 강하게 때리며 튀어나오자 연구원 한 명이 “이변이 생길 것”이라는 예언을 했다.
그때 나도 ‘충격적인 이변’의 징조를 알아챘어야 했지만, 전반 30분 부바 디오프의 골로 세네갈이 앞서갈 때만 해도 “이제 경기가 더욱 재미있어지겠구나” 하는 평범한 생각만 했을 뿐이다.
그러나 아프리카 토인들의 축제를 연상시키는 골 세리머니를 벌인 세네갈 선수들이 불굴의 투지로 프랑스의 맹공을 막아내고 후반 20분 앙리의 결정적인 슈팅이 또 다시 크로스바를 때리면서 ‘충격적인 이변’은 현실이 됐다.
도대체 처음 출전한 월드컵에서 세계 최강을 보기 좋게 꺾은 다음엔 어떤 기분이 들까? 멋지게 첫 승리를 거둔 세네갈에게 부러움이 담긴 축하인사를 보낸다.
그런데 나는 자신의 슈팅이 골포스트를 때린 뒤 허탈한 미소를 짓던 트레제게의 표정을 한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의 아쉬움과 외로움이 해맑은 표정 때문에 더욱 진하게 느껴졌기 때문일까?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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