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만화다.영화 ‘친구’, 뮤지컬 ‘갬블러’, 가수 보아가 흔들어 놓은 일본에 한국만화 열풍이 불고 있다.
한국만화가 번역 출간돼 몇만 부 팔리는 정도가 아니다. 인터넷 전문서점 등장, 대학교재 채택, 팬 사인회 등 불과 1, 2년 전만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도 세계 만화왕국을 자처하는 일본에서. 그러자 일본인들이 한국만화 열풍의 이유와 현상을 직접 설명한 무크지까지 창간했다.
일본의 한국만화 전문 인터넷사이트는 ‘한일당’(韓日堂ㆍw2442.ne.jp/kitajima).
일본인 기타지마 다이키(北嶋大樹)씨가 4월 개설한 이 사이버 서점은 ‘신선! 한국 직수입! 우리 가게의 서적은 전부 한국어 작품입니다’라는 제목 하에 한국만화 100여 종을 판매하고 있다.
박성우의 역사물 ‘나우’, 유 현의 판타지물 ‘선녀강림’ 등 인기작품은 등장인물부터 줄거리까지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사지마 아키코(佐島顯子) 후쿠오카대 현대문화학과 교수는 이번 학기 ‘만화로 보는 한국문화론’ 강좌에 한혜연의 순정물 ‘후르츠 칵테일’을 교재로 채택해 학생들과 함께 읽고 있다.
그는 지난해 심혜진의 ‘안녕하세요? 세바스찬입니다’를 워크숍 교재로 채택하더니 올해에는 아예 정식 교재로 채택한 한국만화 마니아이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양경일(그림)- 윤인완(글) 콤비의 판타지 액션물 ‘신(新) 암행어사’의 인기.
지난해 4월 일본 메이저 출판사 쇼가쿠칸(小學館)이 창간한 월간 만화잡지 ‘선데이 GX’에 연재돼 지금까지 줄곧 애독자 엽서투표에서 인기 1위를 차지해왔다.
5월1~8일에는 도쿄(東京)와 오사카(大阪)에서 팬 사인회를 가졌고, 지금까지 제5권이 나온 단행본은 40만부 이상이 팔렸다.
임광묵의 ‘교무의원’, 전극진의 ‘열혈강호’, 김혜린의 ‘북해의 별’, 황미나의 ‘레드 문’ 등도 골수 팬까지 거느린 인기 작품이다.
일본 요미우리(讀賣)신문에 한국만화 칼럼을 연재하는 선정우씨는 “90년 황미나의 ‘윤희’가 한국만화 처음으로 일본 주간만화잡지 ‘모닝’에 연재된 후 10여년 만에 만화에서 한류(韓流) 열풍이 불고 있다”며 ‘열혈강호’ ‘신 암행어사’ 등이 특히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최근 무크지 ‘비전’(열음사 발행)이 출간된 것도 이같은 한국만화 열풍을 일본인 시각에서 분석해보자는 취지에서다.
사지마 아키코 교수를 비롯해 호소가야 아츠시(細萱敦) 가와사키미술관 만화담당 큐레이터, 마쓰모토 신스케(松本眞輔) 경희대 일본어학과 전임강사 등 일본인 만화 전문가 9명이 한국만화를 꼼꼼히 분석했다.
사지마 아키코 교수는 “1920년대 한국을 배경으로 한 김혜린의 ‘광야’처럼 일본 독자들은 한국만화에서 전혀 다른 역사관을 맛보는 희열을 느끼고 있다” 며 “증오의 대상으로 묘사되는 일본군, 기모노를 입은 어린 주인공을 혼내는 한국인 오빠 등이 대표적 사례”라고 밝혔다.
호소가야 아츠시는 그러나 “임광묵의 히트작 ‘교무의원’ 그림에는 ‘슬램덩크’나 ‘무한의 주인’같은 일본만화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며 “전통적인 한국인의 세계를 보여주는 김동화의 ‘황토빛 이야기’같은 작품이 더 많이 소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무크지 ‘비전’의 편집장 송락현씨는 “1990년대 거품경제 붕괴 이후 만화에서 대형 블록버스터를 탄생시키지 못한 일본이 한국만화에 눈을 돌린 것 같다” 며 “3월 NHK TV의 한국만화 특집, ‘신 암행어사’의 메이저 만화잡지 연재 등도 이같은 사회분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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