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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월드컵 속의 미·일·중·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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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월드컵 속의 미·일·중·러

입력
2002.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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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월드컵 축구대회 개막식 참석차 방한한 남태평양의 섬나라 파라우 공화국의 레멘기사우 대통령 첫 마디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처음 열리는 월드컵 개막식에 참석해 대단히 기쁘다"였다.또한 개최국이 두 나라인 것도 70여년 월드컵 사상 처음이다.

31일 밤 펼쳐진 개막식은 최소한 행사시간 동안이라도 60억 지구촌을 한 마음으로 묶어 놓았을 것이다.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해 '화합(和合)과 상생(相生)', 즉 어울림과 더불어 삶이라는 주제를 유감없이 표현한 관계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것은 민족간 반목과 종교적 마찰, 문화적 갈등이 끊임없는 지구상에서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할 메시지였다.

월드컵과 관련한 수많은 보도 가운데 가슴을 울리는 것은 49개국에서 온 250여명의 어린 학생들이 도라산역(驛)을 방문, 평화를 간절히 기원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10여일 전 평화적으로 독립을 달성한 동티모르의 구스마오 초대 대통령이 개막식에 참석한 것 못지않게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왜 우리는 월드컵에 열광하는가? 모든 참가국이 본선에 나가기 위해 겪어야 했던 고통과 희열, 조바심과 성취감이 한꺼번에 터지는 시간이고 무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해 승패를 겨루는 것도 아름답다. 국가들간에 우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승자와 패자를 예단할 수 없는 불확실성이 보는 즐거움과 재미를 더해 주고, 최고를 지향하는 진짜 프로들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이렇듯 재미있고, 아름답고, 감동적인 세계 축제는 평화가 있는 곳에서, 또 어울려 더불어 사는 곳에서 열려야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성대하고 또 안전한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함으로써 전 세계에 보다 성숙된 문화국민의 면모를 보여줄 것이다. 전통을 존중하며 새로움에 앞장서는 우리 국민의 창조적 특장(特長) 또한 아낌없이 발휘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북한이 동참하지 못한 게 아쉽지만 한반도 정세에 큰 영향을 미쳐온 4개국,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가 이번 대회에 함께 참가하고 있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공교롭게도 우리나라와 같은 조에 속한 미국과는 16강 진출 염원 실현을 위하여 불꽃 튀는 선의의 경쟁을 하여야 한다.

변함없는 굳건한 동맹국으로서 두 나라가 같이 올라간다면 너무 큰 이변일까? 21세기 첫 세계 제전을 일본과 공동으로 개최한다는 것은 바로 '어울림과 더불어 삶'의 표본이다.

양국은 사상 처음으로 시도되는 공동개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을 계기로 앞으로 더욱 가까운 나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나아가 올바르고 분명한 역사인식 속에 보다 협력적인 미래를 만드는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13억 중국인들은 자국의 대표 선수들이 한국민의 응원을 받으며 광주, 서귀포, 그리고 서울에서 열심히 뛰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발전된 한국에 대한 친근감 속에서 한반도 안정과 평화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할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우리 팀과 맞붙을 가능성은 전혀 없겠지만, 러시아는 우리의 실상을 세세히 들어다 봄으로써 앞으로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와 한반도 횡단철도(TKR) 연결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큰 역할을 할 것임을 느낄 것이다.

물론 동북아 정세와 관련이 적은 다른 참가국과의 관계가 덜 중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이미 국경을 초월한 국가간의 관계는 쌍무 또는 다자 차원의 복잡한 국제환경 속에서 자국의 다양한 이익을 지속적으로 추구할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도 31일간의 월드컵 제전은 그 동안 완벽한 준비와 더불어 우리 선수들의 선전으로 세계 속의 한국 위상 고양에 기대 이상의 소득이 있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이번 월드컵이 동북아의 신시대를 여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규형 외교안보연구원 아·태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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