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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월드컵과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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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월드컵과 영어

입력
2002.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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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뉴욕타임스에 영어가 유럽 기업들의 공식 통용어로 자리잡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루이뷔통으로 유명한 LVMH와 프랑스 독일 스페인 합작 항공사인 EADS 등 다국적 기업 뿐 아니라 이탈리아 가전업체 메를로니 등 중소업체 들도 사내 공식언어로 영어를 채택했다고 보도했다.

유럽 회사들의 이 같은 변화는 미국의 시장 지배력이 커진 데다 유럽 경제통합의 영향으로 글로벌 플레이어로서의 이미지를 높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월드컵과 이 기사가 합성되면서 외국어, 특히 영어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영미문학연구회는 최근 학술지 '안과 밖'에서 이 같은 제목의 특집을 마련했다. 영어 전공자들의 분석은 이렇다.

최근의 영어 열풍은 억압에서 비롯된 병리적 현상으로,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더욱 강화되는 경향을 보여준다는 것이 결론이다.

세계 공용어어로서의 영어와 민족 자존심이라는 현실론과 당위론의 이분법적 대립을 넘어서 상호 보완적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느냐가 과제인 셈이다.

■영어 조기 교육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소식이 있다.

서울대 의대 서유현 교수는 얼마 전 열린 유아교육 강사요원 강습회에서 "언어 기능을 담당하는 측두엽은 만 6세 이후부터 집중적으로 발달하며, 그 이전에는 뇌 발달이 이루어지지 않아 언어 학습을 제대로 소화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연세대 의대 신의진 교수도 "조기 과잉 교육을 받은 유아는 자라서는 오히려 학습능력이 뒤쳐지고 정서불안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의 영어 열풍은 외국 언론이 꼬집어 보도할 정도로 이상 과열현상을 보이고 있다.

당장 영어를 못하면 직장에서 불이익을 당하니 새벽에라도 영어 학원에 다닐 수 밖에 없다. 또 자식에게는 같은 설움을 당하지 않게 하려는 부모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영어가 곧 개인의 능력을 가름하는 잣대가 되는 사회는 정상적일 수 없다. 언어는 수단일 뿐이다. 대한민국 전체가 '경제 특구'는 아니지 않는가.

월드컵에서 보듯, 세계는 넓고 언어는 많다.

이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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