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 안에 타결을 목표로 추진해 온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전망이 밝지 않다. 상호 입장차이가 워낙 커 의견접근이 쉽지 않은 데다, 국내적으로는 올해 양대 선거를 앞두고 농민과 정치권의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협상에 임하는 양측의 처지도 크게 다르다. 우리 정부가 현재 전세계에 172개가 발효 중인 개별무역협정의 정글에서 고아가 되지 않기 위해 FTA 협상에 적극적인 반면 칠레 정부는 느긋한 태도다.
지난 달 유럽연합(EU)과의 협정을 포함해 9개의 FTA를 이미 체결한 가운데 13개국과 추가 협상을 진행 중인 칠레로선 급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쟁점에 대한 칠레측 입장도 단호하다. 칠레 외교부의 오스발도 로살레스 경제차관보는 “사과와 배 등 일부 과일에 대한 협정 예외는 있을 수 없다”며 한국측의 양허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국이 주요 수출품인 자동차를 예외로 할 수 없듯이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칠레측 논리를 물리치기 어려운 것이다.
두 나라는 1999년 협상을 시작한 후 지금까지 4차례 공식 협상과 두 차례 비공식 실무협의를 가졌으나 핵심 쟁점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한 상태다.
우리 정부는 올 2월 고위급 실무협의에서 대부분의 농산물에 대해 10년 내 관세를 철폐하되, 국내 산업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마늘 양파 등 민감 품목들에 대해서는 세계무역기구(WTO) 농업협상(2004년) 이후로 협상을 미룰 것으로 제안했다.
또 사과 배 쌀 등 3개 품목은 예외로 하고 포도는 계절관세(생산시기가 중복되는 시기에만 고율관세)를 적용할 것을 주장했다.
정부는 농민의 이해를 반영하면서도 FTA 협상을 추진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물론 무게중심은 FTA 타결쪽에 실려 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국익 차원에서 FTA는 반드시 체결되어야 하며, 일부 산업의 피해는 국내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농림부 관계자도 “농업 분야의 이해가 반영돼야 하지만, 몇몇 품목 때문에 FTA가 무산되어서는 안 된다”는 기본 입장을 밝혔다.
결국 정부는 사과 배 등 칠레측 관심 품목에 예외를 고수하기 보다는 쿼터 할당(이중 관세)이나, 관세철폐 시한 연장 등 절충안을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거세게 반발할 농민단체와 농민에 대한 설득과 보상대책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농민단체들이 기본적으로 거부반응을 보이고, 대선을 앞둔 정치권도 소극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 한-칠레 FTA 타결의 최대 걸림돌이다.
김상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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