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해외기고 / '악동 부시'의 그랜드 투어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해외기고 / '악동 부시'의 그랜드 투어

입력
2002.05.30 00:00
0 0

러시아는 오랫동안 악의 제국이었다.하지만 이제 새로운 '악의축' 국가들과 맞서야 하는 미국에겐 옛 악의 제국을 자기편으로 만들 필요성이 생겼다.

비록 그 제국이 우리를 위협하는 핵능력 배양 국가를 돕고 있을 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러시아는 이제 '선의 제국'이다.

지난 24일 크렘링궁에서 역사적인 군축 협정에 서명하면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되풀이했다.

"이것은 좋은 것이다. 지난 몇십년 동안 지속돼 왔던 러시아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대립 관계는 이제 끝났다. 러시아 국민과 미국 국민에게 좋은 것이고 또 유럽 사람들 더 나아가 전세계 사람들에게 좋은 것이다."

부시의 세계 속에서는 특히 9ㆍ11 이후에는, 오직 선과 악만이 존재하고 있다. 부시 독트린은 항상 양분법을 기본으로 깔고 있다.

'네가 테러리즘과의 관계에서 우리편인지 아니면 반대편인지' 만 중요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원론자다. 그는 당초 백악관에 충성을 주창하며 외교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이제는 세계를 향해 충성을 요구하는 인물이 되었다. 부시의 유럽 방문 직전

일부 유럽인들은 "악동 부시"가 마치 선교사처럼 한층 더 짜증나는 인물로 변했다고 비꼬았다.

첫 방문지 베를린에서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독일 국민에게 설명해달라"는 질문에 "그(사담 후세인)는 자신의 국민을 가스실에 처넣는 독재자"라고 답했다.

이 발언은 전후 독일에서 가장 강력한 것이었다. 실제 그는 이전에도 그런 표현을 사용한 바 있지만 실제 가스실을 악용한 독재자 히틀러의 역사를 지닌 나라에서는 이런 말을 뱉은 적은 없었다.

그러나 부시는 별로 개의치 않는 듯 했다. 그 후 독일 의회에서는 "테러리스트는 인종적 순수성을 내세워 살인을 저지르는 부류"라면서 "우리는 문명을 지키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처럼 부시 대통령도 자신이 믿는 것을 진리로 믿는 전형적인 미국인임을 강조한다.

그는 러시아 지도자와 역동적인 새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다. 부시 가문은 모두 그들이 고결하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어떤 일도 고결할 것이라는 도덕적 근시안을 갖고 있는 듯하다.

부시 대통령은 대 테러전을 돕고 있다며 파키스탄을 껴안고 있다.

그러나 '무샤라프 장군'은 인도를 자극해 결과적으로 핵전쟁을 부추기고 있는 자국내 이슬람 반군에 대해서는 정작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파키스탄은 다른 민주적 가치까지 공유하지는 않는 나라다.

중동의 혼란상 역시 이원론적 대통령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한때 콘돌리사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전직 KGB(국가보안위원회) 수장으로 의심하기까지 했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제 부시 대통령과 서로 애칭을 부르는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언뜻 부시를 지원하는 듯하면서도 이란 문제에 대해서는 "나 역시 미국이 북한에 핵시설을 건설해 주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든가 "대만에 대한 미사일 정책에 몇가지 의문점을 가지고 있다"든가 하며 일침을 가했다.

한 독일 기자는 부시 대통령에게 "미국의 관점에서 보면 시리아도 테러 지원국"이며 "이라크 너머도 염두에 두라"고 충고했다.

나토 주재 한 유럽 대사는 부시의 후세인에 대한 집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당신네 미국인들은 악어를 죽이고 싶겠지만 우리가 볼 때는 늪을 말리는 것이 더 안전하다."

부시는 베를린에서 그의 대통령 생활을 "거품 속의 삶"이라고 표현했다. 9ㆍ11 이후 그는 미국을 흑백의 거품 가운데 놓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의 친구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와 푸틴 대통령은 부시에게 조금은 다른 시각을 보여주었다. 회색 베를린과 적색 크렘린을 말이다.

/모린 다우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NYT신티케이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