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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구시포…쫙 펼쳐진 모래갯벌 참 넓다…깨끗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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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구시포…쫙 펼쳐진 모래갯벌 참 넓다…깨끗하다

입력
2002.05.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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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넓다. 구시포(전북 고창군 상하면 자룡리) 해변에 선 첫 감상이다. 참 깨끗하다. 두 번째 떠오르는 생각이다.진흙 갯벌이 아니라 모래 갯벌이다. 하얀 모래밭에는 티끌 하나 없다. 물이 밀려 내려간 모래밭에 선다.

마치 사막 같다. 메마른 사막이 아니다. 물이 흥건하게 배어있는 젖은 사막이다. 젖은 모래밭은 쉬지 않고 꿈틀거린다. 움직이는 생명들이 눈에 보인다.

구시포는 여름이면 해수욕장이 된다. 과거 교통이 불편해 대도시의 사람들이 찾기는 어려웠다.

인근의 전주나 고창, 부안 사람들이 한가한 해변을 차지했다. 올 여름에는 사정이 조금 달라질 듯.

서해안고속도로 개통 이후 첫 여름이기 때문이다. 용도가 해수욕장뿐이냐고. 그렇지 않다.

구시포의 너른 백사장은 생명의 보고이다. 여름이 일찍 오기는 했지만 아직 물에 풍덩 뛰어들기에는 이르다. 물가에 머물러야 한다.

그러나 파도소리를 들으며 생명의 경이를 배우는 감동. 결코 물속에 뒤지지 않는다.

구시포 해변은 크게 두 곳으로 나뉜다. 포구가 위치한 길이 약 1㎞의 해수욕장과 일부에 군사시설이 들어있는 길이 약 4㎞의 너른 백사장이다. 너른 백사장은 명사십리로 불린다.

먼저 해수욕장에 든다. 양쪽으로 방파제가 들어서 있고 바다에는 가막도라는 바위 섬이 떠있다. 그 사이가 모두 모래밭이다. 언제나 사람들이 모래밭에 있다.

‘귀족 조개’인 백합(또는 생합)을 잡는 사람들이다. 백합은 깊은 모래에 살지 않는다.

기껏해야 약 10㎝ 정도의 모래 속에서 호흡을 한다. 쟁기처럼 생긴 모래 뒤지는 도구나 호미로 모래를 헤친다.

백합은 크고 무거운 조개. 한 마리 한 마리 찾을 때마다 마치 낚시에서 월척을 한 것처럼 기분이 삼삼하다.

아주 흔하지는 않다. 한 가족이 반나절 정도 공을 들이면 개운한 백합탕 한 냄비를 끌일 정도 잡을 수 있다.

백합을 잡으러 모래에 들어가면서 주의할 점은 발 조심. 구시포 해변은 온통 게 세상이기 때문이다.

밀물과 썰물이 나고 들면서 모래에 주름을 그어 놓았다. 마치 연못의 파문처럼 일정하다. 자세히 들여다본다.

모래 주름을 뒤덮은 것이 있다. 게들이 만들어 놓은 모래공(?)이다.

동그랗게 생긴 모래공은 녹두알 크기이다. 해변을 가득 뒤덮고 있다. 더 자세히 들여다 본다. 모래밭이 온통 구멍 투성이이다. 손톱만한 게들이 구멍에 걸터앉아 눈만 내밀고 있다. 손을 가져가면 재빨리 구멍 속으로 사라진다.

명사십리로 자리를 옮긴다. 북쪽 방파제를 지나면 눈에 들어온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명사십리 남쪽 끝에 해변으로 들어가는 모랫길이 있다.

차를 몰고 들어간다. 명사십리의 모래밭은 물이 빠지고 나면 단단하게 굳는다. 그래서 차가 다닐 수 있다. 파도를 바라보며 차를 달린다.

차선도 신호등도 제한 속도도 없는 길. 마구 밟아본다. 시속 100㎞가 넘었을까. 속도계를 본다.

겨우 40㎞이다. 거침없이 트인 시야 때문에 시속 40㎞로만 달려도 고속질주의 쾌감을 느낄 수 있다.

명사십리는 군사시설 때문에 아침 6시부터 저녁 8시까지만 출입할 수 있다. 갯벌에 차를 세우고 있을 때 주의할 점이 있다. 밀물 시기이다.

워낙 폭이 넓기 때문에 차를 세워놓은 곳 뒤에 물이 먼저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바다 쪽만 바라보고 여유를 부리다가는 물에 포위가 된다.

구시포 바다의 낭만은 밤에도 계속된다. 위락시설이 많지 않아 밤이면 산 속처럼 어둡다. 대신 하늘이 밝다. 별이 통통하게 살이 쪄 있다.

하늘을 한참 쳐다보고 있으면 묘한 착각에 빠진다. 어두운 곳에서 들리는 파도소리. 마치 별이 내는 소리 같다.

▽가는 길

서해안 고속도로 고창 IC에서 빠진다. 15번 지방도로를 탔다가 성내리에서 796번 지방도로로 바꿔 탄다.

칠암리에서 22번 국도와 만나는데 용대리, 구암리를 지나 하장리에 이르면 구시포 진입로가 나온다. 길눈이 어두운 사람은 선운사IC에서 빠져 고창 방향의 22번 국도를 선택하면 쉽다.

선운사, 동호해수욕장 등을 지나면 구시포 진입로를 만날 수 있다. 고창읍에서 구시포행 직행버스가 하루 2회, 군내버스가 하루 15회 왕복 운행한다. 고창군청 문화체육과 (063)560-2224

▽쉴 곳

구시포에는 정식 숙박시설이 딱 한 곳 밖에 없다. 해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비치타운모텔(063-562-5658)이다.

해변의 식당과 민가에서 민박을 친다. 상하면사무소(563-0700)나 고창수협 지도과(561-2132) 등에서 민박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선운사 인근에 숙박시설이 많다. 동백여관(562-1562), 산새도관광호텔(561-0204), 선운산유스호스텔(561-3333) 등이 시설이 좋다.

▽먹을 것

고창의 으뜸 먹거리는 풍천장어이다. 이제 전국적으로 이름이 난 브랜드가 됐다.

흔히 풍천을 지역 이름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 풍천장어는 바닷물과 강이 합류하는 곳에서 잡히는 장어를 뜻한다.

밀물이 들어올 때 바람을 몰고온다고 하는데 그래서 바다와 만나는 민물을 풍천(風川)이라 했다.

선운사 부근을 흘러 바다로 들어가는 인천강이 풍천장어의 본고장이다. 인천강 하류는 간만의 차이에 따라 10㎞ 정도 물이 들었다가 바닥을 보이는 곳이어서 장어가 살기에 최적지이다.

고창군 전역에 풍천장어집이 널려 있다. 주로 구이가 인기가 있다.

고창=글ㆍ사진 권오현기자

koh@hk.co.kr

■구경할만한 곳

고창은 바다 외에도 볼거리가 많은 곳. 전북 지역에서 답사여행의 1번지로 꼽힌다. 바다 가는 길 혹은 오는 길에 들러야 될 곳을 꼽아본다.

▽고창 고인돌군

고창은 고인돌의 고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군에 고인돌이 흩어져 있는데 그 수가 약 2,000개 정도로 파악돼 있다.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유적. 지상이나 지하의 무덤방에 거대한 덮개돌을 얹은 것으로 거석문화의 한 형태이다.

개인의 무덤이나 집단의 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이기도 하다. 혹은 종족의 모임이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고창읍 죽림리, 도산리, 아산면 상갑리, 봉덕리 일대에 고인돌이 밀집해 있다. 찾아보기도 쉽다. 길 가 야산에 거대한 돌무더기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북방식인 탁자식, 지상성곽식, 남방식은 바둑판식 등 다양한 고인돌을 볼 수 있다. 동양의 거석문화를 연구하는 중요한 사료이기도 하다.

2000년 11월 인천 강화군, 전남 화순군의 고인돌군과 함께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이후 이를 공원화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선운사

선운산 도립공원에 들어있는 명찰. 동백꽃으로 유명한 사찰이다.

백제 위덕왕 2년(577년)에 검단선사가 창건한 절로 한창 때에는 89개의 암자와 승려 3,000여 명을 거느린 대찰이었다.

정유재란 때 대부분 소실되고 지금은 10여 개의 절집만 남아있다.

6층 석탑이 명물이다. 대웅전 바로 앞에 있는데 높이가 13m이다. 고려 말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하늘을 향해 약간 휘어져 있는 옥개석이 아름답다.

동백나무가 빠질 수 없다. 대웅전, 영산전과 절 뒤에 팔상전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동백 자생지가 있다. 동백나무의 수령이 500년쯤 된다고 한다.

▽고창읍성

원형이 잘 보전된 성곽으로 꼽힌다. 조선 단종 1년(1453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성의 높이는 4~6m, 둘레는 1,680m에 이른다. 동, 서, 북의 세 문과 적정을 관찰하기 위해 성의 일부를 반달꼴로 돌출시켜 놓은 망루가 여섯 개 있다.

읍성 내의 대나무숲이 아름답다.

■길에서 띄우는 편지

요즘 차창을 닫고 다닙니다. 에어컨을 켜기 때문이죠. 이미 자연의 모습과 기온은 여름입니다.

아스팔트 위는 더욱 그렇죠. 시원한 차 속에 앉아있다가 문을 열고 나가면 울컥 열풍을 느낄 정도입니다. 더운 기운을 받으면서 벌써 여름 휴가를 떠올립니다.

사실 가장들에게 여름 휴가는 휴가가 아닙니다. 골치 아픈 숙제일 수도 있습니다. 미리미리 숙박할 곳을 예약하고, 아내와 아이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짜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운전대는 대부분 가장의 차지입니다. 체증으로 짜증이 나는데 시원한 맥주 한 잔도 마음대로 마실 수 없습니다. 고역입니다.

진짜 고역은 인파와의 전쟁입니다. 사람이 지나치게 많은 곳에서는 모든 것이 왜곡됩니다. 수요와 공급이 완전히 균형을 잃기 때문이죠.

하룻밤에 10만 원이 넘는 허름한 민박, 비싼 것 외에는 아예 팔지 않는 식당, 평소보다 3~4배는 비싼 생필품…. 유명 피서지에서 누구나 경험하는 일입니다.

정작 비싼 값을 지불해도 푸대접을 받기가 일쑤입니다.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여행지의 상인들은 이 기간에 일부러 뻔뻔해집니다.

왜 이런 고통을 감수해야 할까요. 가장 큰 이유는 우리의 휴가문화가 ‘피서(避暑)’와 동일하게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더위를 피하는 것이 휴가입니다. 그래서 더운 여름에 일제히 휴가를 떠납니다. 사람들이 몰릴 수 밖에 없습니다.

참 구식 생각입니다. 냉방기 등 문명의 이기가 없었던 옛날의 사고입니다. 여름에 더위를 피하는 최상의 방법은 냉방기가 돌아가는 사무실이나 집에 앉아있는 것입니다.

밖으로 나가는 것은 오히려 더위를 맞으러 가는 셈입니다. 여름은 사실 여행하기에 가장 짜증나는 계절입니다.

무성해져 버린 자연은 아기자기한 맛이 떨어집니다. 모기, 파리 등 벌레도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덥다는 게 큰 고통입니다.

그러나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오랜 피서 문화와 맞물린 사회구조에 꽁꽁 묶여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방학도 그렇고, 회사의 휴가 방침도 그렇습니다.

초등학교의 경우 교장의 재량에 따라 방학을 자율화하고 있지만 크게 변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사계절의 자연을 두루 감상하는 자유스러운 휴가는 꿈일 뿐입니다. 이른 더위에 휴가 생각을 하니 더 더워집니다.

권오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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