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ㆍ통상적으로 유럽과 불편한 관계에 있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일주일에 걸친 러시아 및 유럽 3개국 순방이 28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_러시아 정상회담만을 남겨놓은 채 파리 방문을 마지막으로 끝났다.순방의 주요 목적이 러시아와의 전략핵무기 감축 서명 및 러시아의 나토 공동위원회 참여 확정, 대 테러전 확전에 있었던 만큼 상당 부분 성과를 거뒀다고 백악관은 자평했다. 특히 러시아와의 핵 감축 협정 서명과 러시아의 나토 참여는 냉전의 마지막 정리 작업으로서 역사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환경 통상 중동분쟁 등 그의 취임 이후 노출된 유럽_미국 간 외교 현안은 각국 정상과의 회담장에서 깊이있는 논의가 이뤄지지 못해 의례적 수준이었다는 평가가 대체적이다.
유럽과의 이견이 큰 것을 인정한 백악관이 순방의 의미를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에 한정, 애초부터 한계를 안고 시작한 방문길이었다는 분석이다. 부시 대통령이 그나마 강한 의지를 갖고 회담에 임했던 대 이라크 테러전 확산도 가는 곳마다 벽에 부닥쳤다.
러시아에서는 이고리 이바노프 러시아 외무장관으로부터, 독일 프랑스에서도 상대 정상들로부터 “미국의 일방적인 확전은 반대한다” 는 입장만을 재확인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기자회견장에서는 러시아의 대 이란 핵시설 지원 문제를 놓고 뜨거운 설전이 오갔다.
부시 방문에 맞춰 독일 집권 사민당은 “이라크 확전은 사담 후세인 정권이 알 카에다를 비호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고 언급,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운신폭을 원천 봉쇄했다.
반미 시위는 여전히 골칫거리로 등장했다. 독일에서는 수도 베를린을 비롯해 함부르크 뮌헨 뒤셀도르프 등 50여개 도시에서 크고 작은 시위가 잇따랐다. 베를린 도심에서는 평화운동단체와 반세계화 운동단체, 친 팔레스타인 시민 등 2만여 명이 미국의 패권주의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프랑스 파리에서도 4,500여명이 미국의 일방주의 대외정책, 사형제도 등에 반대하는 행진을 벌였다. 일부에서는 부시 대통령이 유럽의 분노를 설득하기 위해 미국을 선전하기보다 비판을 듣고 그 강도를 이해하려는 쪽에 더 많은 비중을 뒀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핵 감축, 나토 문제에서 러시아와 합의를 이끌어 낸 부분은 순방의 의미가 결코 적지 않음을 보여주는 실례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특히 핵 감축은 국제 긴장완화의 추세를 피부로 느끼게 해 미국의 탄도탄요격미사일(ABM) 협정 탈퇴에 대한 유럽측의 비난을 상당부분 희석시켰다는 분석이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