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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세속적인 철학자

입력
2002.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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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 역사 교과서의 일반적인 표준에서 본다면, 그들은 대단한 사람이 못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군을 지휘한 일도 없고, 많은 사람을 주검으로 보낸 일도 없으며, 역사를 창조하는 일에 가담한 일도 거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몇 사람은 명성을 얻었으나 국가적 영웅은 아니었고, 몇 사람은 지독한 욕을 먹었지만 국가적 악당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이 한 일은 빛나는 영예를 받은 정치가의 행위보다 역사의 과정에 있어 더 결정적이었고, 전선에서 활약하는 군대보다도 더 영향력을 가졌고, 좋은 일에 있어서나 나쁜 일에 있어서나 왕과 입법자들의 명령보다 더 큰 위력이 있었다. 그들이 한 일은 사람들의 사상을 형성하고 지배하는 것이었다."R.L. 헤일부르너는 '경제사상사' 서문에서 이같이 썼다. 이 책의 부제는 '위대한 경제학자들, 그들의 생애와 사상'이다.

아담 스미스에서 존 케인스까지 다루었다. 그는 경제학자들의 생각이 얼마나 세상을 크게 변화시켰는지를 말하고 있다. 그들이 평소에 언급한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결국 세상을 바꾸었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 마르크스가 설파한 '자본주의의 모순', 세계 대공항 극복을 위한 케인즈의 '유효수요 이론' 등을 생각해 보면 그들의 사상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원 제목은 '세속적인 철학자들(The Worldly Philosophers)'이다.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경제관은 한마디로 각각 안정과 성장으로 이야기된다. 두 후보 모두 중요시하는 시장에서 그렇게 분류한다.

노 후보는 소득이 골고루 분배되지 않으면 수요가 항상 부족하고 언제 불경기가 올지 모른다며 건강한 분배를 강조하고 있다. 안정을 통한 성장 추구가 그의 논리다.

이 후보는 앞으로 20년 동안 매년 6% 이상 성장할 수 있도록 체질을 강화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밝히고 있다. 성장이 일자리를 만들고 복지를 살리는 길이라는 주장이다. 성장 우선론이다.

성장이 먼저냐, 분배가 우선이냐는 너무나 '고전적인' 명제다.

효율과 평등 중에서 어느 것을 더 중요시하느냐는 것으로, 이 문제는 경제학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다.

국민들이 배 불리 먹으려면 일단 파이를 크게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일리가 있고, 파이를 크게 만드는 것 못지않게 어떻게 공정하게 나누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 역시 타당하다.

그래서 이 논쟁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고, 아직도 유효하다. 세계 각국의 정당은 어느 쪽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갈라지고, 선거 때마다 국민들의 심판을 받는다.

우리의 경우는 이런 논쟁이 너무 늦었다. 압축 성장으로 앞만 보고 달리다가 국제통화기금(IMF) 덫에 걸려 넘어진 다음에야 겨우 정신이 들었다.

성장과 분배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둘을 동시에 추구할 수는 없다. 상대적으로 어느 한 쪽을 중시할 수 밖에 없고, 그에 따라 경제운용의 큰 방향이 달라지고, 국민들 생활이 영향을 받는다.

노 후보와 이 후보는 좀 더 자신의 경제관을 분명히 해야 한다. 처음에는 그런대로 구별되는 것 같았으나 표를 의식해 진보는 보수를, 보수는 진보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해서인지, 갈수록 모호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아직 할 일이 많은 기업 금융 공공 노동 등 4대 부문의 개혁을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인지에 대해 소상히 밝혀야 한다.

국민들이 듣고자 하는 것은 총론이 아니라 구체적인 각론이다.

세계는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자유화와 개방화는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자칫 조금이라도 방향을 잘못 잡으면 선진국으로의 진입은 요원하게 되는 상황이다.

누구에게 경제를 맡길 것인가를 그 어느 때보다 중요시해야 하는 이유다. 대통령은 국민 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세속적 철학자'이기 때문이다.

이상호 논설위원 기자

s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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