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화선 바이 임권택.’스페인의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감독상 발표에 부인 채령(본명 채혜숙)씨와 이태원 태흥영화사 대표는 울음을 터뜨렸지만, 임 감독은 의외로 담담했다.
폐막식 파티에 참석해 취기가 약간 오른 그를 만났다.
-시상식에서 매우 차분한 모습이었다. 솔직히 어떤 심정이었나.
“긴 세월 해외영화제에서 수상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한번은 타야 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를 느꼈다. 멍에를 쓴 느낌이었다. 개인적 성취를 떠나 사명감을 느낄 정도로. 지워졌던 멍에를 풀어버려 좋다.
그리고 한마디 더. 이런 상을 받으면 마치 감독 개인의 능력으로 오해하는 데 그렇지 않다. 연기자가 상을 받으면 자기 혼자의 것이 아니듯, 영화는 높은 수준의 스태프의 능력이 결집된 결과가 나와야 수상하는 것이다.
(그는 이태원 태흥영화사 대표와 정일성 촬영감독, 그리고 주연배우 최민식과 안성기에게 공을 돌렸다.)”
- ‘만다라’ 이후 감독은 한국적인 아름다움, 혹은 정체성을 찾아 긴 여행을 해왔다. 왜?
“미국 영화의 아류의 것에서 벗어나 한국 사람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한국 영화를 해낼 수 없겠는가, 이것이 감독으로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왔다.
그러나 생각만으로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상당한 시행착오를 통해 여기까지 왔다. 결과에 대한 대답을 할 수가 없어 단지 노력해왔을 뿐이다.”
-‘취화선’은 문화 장벽이 많은 영화지만 심사위원들의 반응이 매우 좋았다. 영화의 어떤 부분을 평가했다고 생각하는가.
“폐막식 후 파티에 데이비드 린치 위원장 등 4명의 심사위원이 다녀갔다. 이름을 밝히기는 그렇지만 ‘영화제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화다, 장면 장면이 거의 완벽주의자의 작품처럼 완벽하다. 이미 거장으로 알고 있었으나 이번 영화를 통해 완전히 굳혀진 것 같다’고 표현했다.
-프랑스 기자들이 ‘취화선’이 황금종려상감이라며 수상결과에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국내보다 외려 외국에서 더 호의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국내 평론에 대해 섭섭함이 있을 법도 하다.
“외국에서 더 좋게 평가받는 것이 사실 아쉬울 때도, 불만이 있을 때도 있다. 특히 완성도를 차치하고라도, 감독이 무엇을 그리려 했는가를 귀 기울여 들여야 하는 데 마구잡이로 평가하는 것은 우리 영화발전에 해가 될 수도 있다.
-고아 출신인 장승업은 속기(俗氣)가 많다고 문인화가들에게 비난 받는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감독 자신의 영화에 대한 문기(文氣)와 속기의 비율은.
속기를 너무 부리면 천박하다 할 것이고, 문기가 많으면 밥벌이가 안될 것이고. 그 둘을 조화롭게 만드는 것이 나의 숙제다.
-이태원 대표는 ‘(상을) 타도 하산(下山), 못 타도 하산’이라고 했다. 같은 심정인가? 다음 작품은.
“하도 힘이 들어 그랬을 것이다. 내가 이 나이에 또 황금종려상을 탈 것도 아니고… 이제 영화제 부담을 벗고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고 싶다.”
배우 최민식은 “뭔가를 만들지 말라는 주문이 처음에는 야속했다. 그러나 그 말은 장승업 안에 통째로 들어가라는 것이었다. 어려움은 많았어도 연륜있는 감독의 냄새를 맡는 기회였다”고 임 감독과의 작업을 회상했다.
배우 안성기는 “감독님이 큰 멍에를 벗었으니, 이제 나도 조금 가벼운 짐을 한 번 져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이들은 질 자콥 영화제 집행위원장과 데이비드 린치 심사위원장의 사인이 든 아주 간략한 형태의 감독상 인증서를 들었다. 종이 한 장.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고졸의 학력으로 영화 밑바닥인생부터 시작해 98편의 영화를 만든 우리 거장이 이뤄낸 초유의 업적은 종이 한 장의 무게였다. 그것은 한없이 가볍지만, 한없이 무거운 바로 그것이었다.
칸=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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