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카불 근처에 숨어있어요. 그는 아스날을 사랑해요. 오사마. 오! 오! 오!” 영국 런던의 명문 구단인 아스날 경기장에서 종종 들을 수 있는 응원가 중 한 대목이다. 이 응원가는 9ㆍ11 테러의 배후로 지목되는 오사마 빈 라덴이 아스날의 열렬한 팬임을 말해 준다.빈 라덴은 1994년 런던에서 3개월 동안 머물면서 아스날의 경기를 보기 위해 네 번이나 축구장을 찾았다. 아들을 위해 아스날 문양이 찍힌 기념물을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는 아직도 친구들에게 축구보다 더 열광적인 것은 느껴본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 빈 라덴이 살아있다면 월드컵 기간 동안 무엇을 하고 싶어할까. 뉴욕 타임스 매거진은 26일 빈 라덴은 세계 수십억 축구팬들처럼 TV를 통해 한국과 일본에서 열리는 월드컵 경기를 지켜볼 것이라고 보도했다.
지난해 12월에 공개된 빈 라덴의 비디오테이프에는 2번이나 축구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 알 카에다 조직원이 세계무역센터가 붕괴되는 순간의 느낌을 축구 경기에서 승리했을 때의 기분과 비교했다는 표현도 있다.
축구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다. 계층 국가 인종 이념의 벽을 넘게 하는 문명의 에너지다. 축구만큼 세계화한 것도 없다. 태국 방콕의 한 불교사원에는 잉글랜드팀의 최고 스타인 데이비드 베컴의 동상까지 세워져 있다.
1997년 엄격한 이슬람 국가인 이란에서는 축구가 일대 ‘사건’을 만들었다. 98년 미국 월드컵 진출권을 놓고 호주와 싸워 승리하자 수천 명의 여인들이 전통 복장인 차도르를 벗어던진 채 경기장 안으로 뛰어들었다.
전국에서 벌어진 거리 축제에서 남녀 할 것 없이 뒤엉켜 춤을 추고 자연스레 입을 맞췄다. 이란 당국의 경고는 물론 이슬람 교리와 사회적 금기도 이들을 막지 못했다. 이란 지식인들은 이를 두고 ‘축구 혁명’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란 정부에 축구는 미국만큼 무서운 적이 되어가고 있다.
아르헨티나 축구 선수들은 좌파 성향의 국가대표팀이라고 할 만하다. 그들은 교사나 근로자들을 지지한다는 슬로건을 들고 경기장에 입장할 때가 많다. 그래서 이번 월드컵에 임하는 자세가 더 각별할 수밖에 없다. 파탄 지경에 빠져 있는 아르헨티나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조국에 우승을 안겨야 한다는 각오다.
축구는 군중을 움직이는 힘이다. 역대 독재자들이 이를 간과했을 리 없다. 독일 나치정권의 선전장관이었던 괴벨스는 1941년 히틀러의 생일 때 축구경기에서 독일이 스위스에 2대 1로 지자 경기 결과에 대한 의구심이 완전히 가실 때까지 스포츠 교류를 전면 중단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 아들 우다이는 이라크 축구팀이 국제 경기에서 지면 선수들을 고문하기까지 했다. 무솔리는 유명 축구 선수들과 찍은 사진을 국민에게 자주 공개했다.
김병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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