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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쓰는 편지 / 운재씨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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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쓰는 편지 / 운재씨에게

입력
2002.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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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오빠’라는 두 글자를 쓰기가 왜 이렇게 힘든지. 눈물까지 나오려고 하네요. 오빠가 너무 보고 싶어서 일까, 고생하는 오빠가 안쓰럽기 때문일까…. 늘 불러도 부르고 싶은, 부를 때마다 가슴 한 구석이 아려오는, 오빠, 오빠, 오빠….21일 잉글랜드전에서 골문을 지키는 늠름한 오빠를 지켜보려고 경기장까지 찾아갔지만 결국 오빠 모습 한번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어요. 오빠가 큰 실수를 하진 않을지 조금이라도 다치진 않을지 걱정이 돼서 얼굴을 제대로 들 수가 없었거든요. 계속 발끝만 보며 관중의 함성 소리에만 귀를 기울였지요.

전반 25분께 첫 골을 허용했을 때는 너무 속상했어요. 하지만 “오빠 힘내요. 현주가 여기 있잖아요”라고 주문을 외우며 더욱 열심히 응원했답니다. 이기진 못했지만 좋은 성적 거두게 돼서 다행이에요. 22일 아침 오빠 얼굴 환한 것 보고 얼마나 안심했는지요.

그리고 월드컵 본선경기에서는 한 골도 용납하면 안돼요. 우리 결혼한 지 4주년 되는 6월13일, 최고의 결혼기념선물로 ‘실점률 0%’를 부탁할게요. 약속해요, 오빠!

결혼기념일 얘기 하니까 우리 처음 만났던 때가 생각나요. 1994년 미국 월드컵에 출전했다 돌아온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오빠가 그렇게 유명한 축구선수인 줄도 모르고 그저 “정말 좋은 사람이다”라고만 생각했지요. 그 땐 월드컵은 커녕 축구도 잘 몰랐었는데 이젠 축구박사가 다 됐네요.

오빠, TV나 영화에서 불륜이나 이혼 얘기가 많이 나올 수록 나날이 더 깊어지는 우리 사랑이 소중하게 느껴져요. 다른 부부들처럼 매일매일 보지 못해서인지 오빠를 볼 때마다 난 아직 가슴이 콩닥콩닥 뛴답니다. 오빠도 그렇죠? 엊그제 제주도에서 만나 꼭 안아줄 때 다 들었단 말이에요. 오빠 심장 쿵쿵거리는 소리요!

‘김현주 축구박사’가 보기에 우리나라가 16강에 진출할 가능성은 100%에요. 조금의 행운이 따라준다면 8강, 아니 4강도 가능할 것 같아요. 히딩크 감독님도 믿음직스럽고 무엇보다 대표팀 선수들간의 단합도 최고고요. ‘축구는 혼자 하는 경기가 아니다’라는 걸 우리 선수들 모두 다시 한번 깊이 새겼으면 좋겠어요.

오빠, 조금만 부진한 모습을 보여도 팬들이나 언론이 날카로운 말들을 쏟아부을 땐 오빠도, 나도 너무 속상하지요. 지금은 모든 걸 잊고 오직 골문만 열심히 지켜요. 월드컵이 끝나면 오빠가 제일 좋아하는 된장찌개에 내 사랑 듬뿍 넣어서 위로해 줄게요.

보고 싶어요, 오빠. 그리고 사랑해요. 오빠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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