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75)가 27일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다.이번 방한은 한때 분단국이었던 독일 좌파 지식인의 대변자이자 독일의 ‘비공식적 양심’으로 불리는 그가 지구상 마지막 남은 분단 국가인 한국에 가진 관심 때문이다.
그라스가 아시아 지역 국가를 방문하는 것도 처음이다.
그라스는 28일 판문점을 방문하고 29, 30일 중앙대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리는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한다.
중앙대 한독문화연구소(소장 권영운)와 주한독일문화원이 공동 주최하는 심포지엄의 주제는 ‘통일과 문화’.
통일 12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문화적 이질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독일의 현실이 통일의 과제를 앞둔 한국에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다는 기획 의도다.
그라스는 29일 ‘독일 통일에 대한 성찰’이라는 연제로 강단에 선다. 통일과 문화의 연관성을 짚는 한편, 통독 이전을 회고하고 현재를 점검하며 미래를 전망하는 자리다.
그는 영토 개념에 기초한 민족국가 형태의 통일을 반대하고 다양성이 존중되는 ‘국가연합체’의 형태를 주장하면서, ‘문화민족’으로 남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해왔다.
“통일을 지속적으로 담보하는 것은 체제가 아니라 인간의 정신, 즉 문화”라는 게 그의 믿음이다. 그러나 독일 통일에 대한 그의 시각은 비판적이다.
통일은 근본적으로 자본주의가 약탈적 형태를 띠고 전지구적 차원으로 확대되는 ‘세계화 현상’의 일부라는 것이다.
그는 “통일은 어느 정도 길들여졌던 서구 자본주의가 다시 미친 개처럼 날뛰는 계기를 주었다”고 파악한다.
무엇보다 통일 이후 독일 지식인 사회에 만연한 보수화 경향에 대해 그는 일침을 놓는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특징짓는 것은, 정확하게 말해 기형으로 만드는 것은, 이상과 언어의 전면적인 부재다.”
1987년 휠덜린상을 수상한 시인 우베 콜베, 브레멘방송국 문화부장인 외르크 디터 코겔도 그라스와 함께 방한한다.
콜베는 독일 통일 과정을 섬세하고 예리한 시어로 포착해온 동독 출신 시인으로, 심포지엄에서 ‘독일 통일과 작가의 역할’을 발표한다.
코겔은 ‘통일을 위한 언론의 역할’이라는 강연을 통해 언론의 바람직한 기능과 역할을 점검한다.
한국의 지식인으로는 ‘분단체제론’의 백낙청 서울대 교수가 29일 ‘분단 체제 극복을 위한 지구적 시각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통일론을 발표한다.
소설가 황석영씨는 통일 문학의 가능성을 짚어보는 ‘남북 통일문학의 전망’을, 김문환 서울대 교수는 햇볕정책의 문화적 차원을 분석하는 ‘통일과 문화정책’을 발표한다.
한편 한독문화연구소는 월드컵 개막식이 열리는 31일 그라스가 서울 상암동 월드컵 주경기장에서 축시를 낭송하는 행사를 추진하고 있다.
또 방한에 맞춰 그라스의 최신작 ‘게걸음으로 걷다’와 대표작인 ‘넙치’가 민음사에서 번역출간될 예정이다.
영기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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