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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그래도 희망은 싹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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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그래도 희망은 싹튼다

입력
2002.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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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내가 상임이사를 맡고 있는 아름다운재단에서 간사들과 내기를 했다.간사들은 내 수첩에서 160명을 뽑아서 편지를 보냈다. 아름다운재단이 벌이고 있는 1% 나눔운동을 주도할 우리사회 명사 100명을 모아 100인 위원회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160명에게 보내서 그 가운데 100명의 승낙을 받아내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었다.

적어도 300~400명에게는 편지를 보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만약 간사들 생각대로 160명 중에 100명이 호응해 오면 "내가 1,000만원을 내겠다"고 약속했다.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는 말 보다 더욱 강한 약속이었다. 물론 그럴 리가 없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100명을 넘어섰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117명이 승낙을 해 왔다. 자신의 수입이나 월급의 1%를 매달 기부하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다.

나는 꼼짝없이 1,000만원을 내놓게 되었다. 정말 큰 일이 났다. 오히려 "장을 지지겠다"는 말을 할 걸 하는 후회가 생겼다. 누구도 나에게 "장을 지지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1% 나눔운동은 아름다운재단이 2년여째 벌여오는 운동이다.

자신이 가진 재산, 수입, 월급, 더 나아가 시간, 힘, 재능 그 무엇이든 이웃과 함께 나누자는 것이다. 교회에서 하는 십일조는 좀 많을지 몰라도 1%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동참할 수 있는 액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된 운동이다.

여기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2,000명을 넘어섰다. 그 가운데에는 울산에서 행상하는 아줌마, 구두닦이 아저씨도 있다.

심지어 장애인으로서 정부로부터 생활보조를 받는 분이 그 가운데 1%를 내기도 한다. 이 분들을 보면서 이 세상에 나누지 못할 가난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연 하나 하나가 감동의 물결이었다.

따지고 보면 그 동안 우리나라의 기부문화는 부자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었다고 할 수 있다.

텔레비젼 프로그램을 통해 벌어지는 ARS의 감동은 그야말로 개미군단이 벌이는 기부의 제전이다. 전화번호를 누를 때 마다 1,000원씩 모여 순식간에 거액의 돈이 모이는 것을 화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평생 힘들게 번 재산을 대학이나 병원 등에 筆?내놓는 할머니들의 기부 행진은 놀랍기만 하다.

평생 국밥장사, 콩나물장사, 삯바느질을 해온 할머니들이다. 우리나라 기부는 바로 할머니들이 주도해 왔다고 할 만하다.

그런데 이번 '100인 위원회' 행사를 통해 이제 우리 사회에도 일고 있는 큰 변화를 읽게 되었다.

사회 명사들이라고 반드시 인색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100인 위원회'가 출범한 당일 참석한 분들 가운데에는 1%를 넘어서서 5%를 약속한 분도 있고, 심지어 아름다운재단이 새롭게 벌일 '옥스팜 운동'(헌 물건을 기부받아 판매해서 남는 수익으로 자선에 다시 쓰자는 운동)을 위해 점포 보증금을 내겠다거나 그 운동을 위해 자신의 자동차를 기증하겠다는 분도 나타났다.

이웃과 사회를 위한 기부도 전염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 사회가 기부의 '열병'이 번져 기부의 천국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그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이야기해 왔다. 우리 사회에서 높은 지위와 명성과 특권을 지닌 상류 계층이 그만큼 높은 사회적 책임도 진다는 것이다.

오늘 끝없이 이어지는 게이트, 스캔들, 부패 사건과 거기에 연루되는 정치인, 금융인, 기업인들을 바라보면서 국민들은 우울하기만 하다.

그만큼 절망과 탄식이 깊어진다. 그 가운데에서 들려온 '100인 위원회' 소식은 우리에게도 작은 희망이 싹트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간사들에게 내기에 져 그 빚을 갚기가 막막하지만 그래도 기부자가 늘어나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박원순 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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