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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쓰는 편지 / 을용씨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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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쓰는 편지 / 을용씨에게

입력
2002.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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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갑자기 더워지네요. 그곳 제주도는 바닷가라 조금은 시원하지요? 날이 더워지는 것을 보니 월드컵 개막도 며칠 남지 않았나 봐요. 6월4일 부산에서 초여름밤 시원한 공기를 가르며 그라운드를 뛰어다닐 당신의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정말 그날이 기다려집니다.을용씨.

지난 주말 2박3일간의 휴가가 주어진다는 얘기를 했잖아요. 그래서 내가 제주도에 내려가 이달 초 당신을 훈련장에 떠나 보낸 뒤 무려 20일 동안이나 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을까 기대했어요. 하지만 7월에 태어날 우리의 첫 아이와 내 건강을 당신이 걱정하는 통에 가지 못하고 말았네요.

저는 당신이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정도로 잘 지내고 있어요.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당신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일 뿐. 그래도 매일 매일 신문과 TV에서 당신 모습을 보고 전화통화 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어요.

그때 생각나죠? 우리 연애하던 시절 말이에요. 당신과 처음 만났던 1994년, 그때 당신은 강릉상고를 졸업하고 대학에 갔다가 중간에 그만 두고 사회로 나온 어려운 상황이었죠. 하지만 다행히 실력을 인정받아 실업팀 한국철도에 입단했고 축구를 계속할 수 있었죠.

방배동에서 당신의 용산 숙소까지 찾아가 밥을 함께 먹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밤. 당신은 월드컵에서 뛰어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그 소원이 이제 이루어지게 생겼어요. 당신이 히딩크호에 승선했을 때만 해도 실감하지 못했는데 이제 열흘 앞으로 다가온 월드컵 때문에 가슴이 두근두근거려요.

물론 당신에게는 힘든 일도 있었어요. 작년 1월 히딩크호 1기 대표로 뽑혔을 때 우리 서로 기뻐했잖아요. 그런데 일주일만에 연습경기를 하다 무릎이 파열 돼 5개월이나 대표팀을 떠나 있었죠.

저는 그 때 몸에 좋다는 것만 잔뜩 당신에게 먹였고 당신이 실망하지 않도록 조용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죠. 그 때는 마음이 아팠지만 지금은 결과가 좋아 정말 다행이에요.

뱃속의 아기가 또 발로 차네요. 아마 당신을 닮아 멋진 축구선수가 되려나 봐요.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당신이 돌아올 때면 우리의 아기도 세상 구경을 준비하고 있겠죠. 그때 멋있는 아빠로, 난 이렇게 자랑스럽게 한국월드컵 대표팀에 있었노라, 말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건강하고 좋은 성적 거두는 데만 신경쓰세요. 저도 몸 건강히 당신의 승리를 기원하고 있을테니까요.

부인 이숙(30)씨와 이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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