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편집국에서] 신명의 잔치판을 벌이자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편집국에서] 신명의 잔치판을 벌이자

입력
2002.05.22 00:00
0 0

문: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받는 선수 11명이 팽팽하게 바람을 넣은 가죽공을 7.2m선(골라인) 너머로 옮기고 있다. 다른 11명이 같은 공을 91m 떨어진 다른 선 너머로 몰고 간다. 이들이 한 달간 벌이는 64경기를 보기 위해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답:370억명. 마지막 90분을 본 사람만도 17억명-세계인구의 4분의 1-이다.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이처럼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뇌세포까지 낭비하는 것을 의아하게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1998년 프랑스월드컵은 지구에 마법을 걸었다. 영국 스태퍼드셔대학 교수 엘리스 캐시모어는 저서 ‘Making sense of sports’의 서론을 이 같은 문답으로 시작한다.

세계의 종교가 된 축구에 귀의하지 않은 나라는 없다. 축구라는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우뚝 서 있는 존재가 월드컵이다. 2002 한일월드컵축구대회가 아흐레 뒤면(31일) 막이 오른다.

96년 5월31일 스위스 취리히의 국제축구연맹 집행위원회에서 월드컵 사상 최초로 공동개최가 결정된 지 6년 만이다.

한국에서 조 예선을 치를 15개국중 스페인이 21일 가장 먼저 울산에 준비캠프를 차렸다. 일본에서 조 예선을 갖는 잉글랜드와 한국대표팀의 이날 평가전 역시 사상 처음이다. 사실상 잔치는 시작된 셈이다.

잔치는 손님맞이다. 잔치를 통해 사람들은 벽을 허물고 하나가 된다. 월드컵은 잔치다. 그것도 지구촌 60억 인구중에서 엄선된 32개국(팀당 엔트리 23명) 필드의 마술사 736명이 4년마다 벌이는 둘도 없는 잔치다. 잔치는 흥을 동반한다.

잔치에 흥이 일지 않음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 등 정치일정과 국민을 절망과 분노의 나락으로 밀어넣은 이른바 '홍삼(弘三) 게이트' 의 여파일 것이다.

걱정할 것 없다. 손님맞이에 정성을 다 함이 우리네 미덕 아닌가. 정작 필요한 것은 즐기는 자세다. 더 이상 점잔만 빼는 주인은 되지 말자.

즐기자, 손님과 함께 신명을 내보자. 그렇다고 방종과 탈선에 앞장서자는 뜻은 아니다. 예절과 친절은 갖추되 열린 마음으로 손님과 어울리자는 말이다.

언제 우리가 그런 적이 있었나. 서울올림픽 당시로 돌아가보자. 우리의 삶이 이만큼 펴졌다는 긍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손님 앞에서 마냥 자세를 낮추기만 했다. 오죽하면 과공비례(過恭非禮)의 자괴감까지 일었을까.

21세기 첫 월드컵의 성공이 반듯이 한국대표팀의 16강 진출에만 있지 않다. 설사 우리의 염원이 다음 기회로 미뤄진다 해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 선수들은 최선을 다할 테니까.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들 모두 최고중에서도 최고가 아닌가. 최선을 다하는 선수와 경기는 참으로 아름답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의 생명이 잔치가 끝난 뒤에까지 살아 숨쉬게 만드는 것은 당연히 우리 국민의 몫이다.

이기창 월드컵기획단장겸 체육부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