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원(67) 화백의 그림은 우리 삶의 진실에 가차없이 육박한다. 그가 그린 ‘동해인’들은 누구일까. 화가가 동해 바닷가를 떠돌며 그림의 대상으로 발견한 노인네들.그러나 그들은 단지 소금기 많은 바닷바람에 쩔은 어촌의 왜소한 노인들이 아니다.
어깨는 휘고, 얼굴과 손마디는 온통 주름으로 깊게 패이고, 백발은 바람에 흩날리지만 그들의 시선은 다른 곳에 닿아있다.
이미 삶의 온갖 신산을 다 겪고 그 곡절을 가슴 깊숙한 곳에 묻은 채로 인생 저 너머를 바라보는 ‘인간’의 모습이다.
이 화백의 그림을 볼 때 누구나 자신의 어깨에 지워진 만큼의 삶의 무게를 느끼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 화백이 22일부터 6월 10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 상(02-730-0030)에서 개인전을 연다.
질기고 두꺼운 한국 전통 종이인 장지에 수묵과 유화 물감을 함께 사용하는 독특한 기법으로 그린 100~500호 크기의 ‘동해인’와 ‘향(鄕)’ 연작 35점이 나온다.
작가는 2년 전부터 강원 춘천시 부산면 산골에 터를 잡고 동해로 현장 스케치를 떠나며 작업하고 있다. 사라져가는 어촌 마을과 시골의 갯벌과 논바닥을 갯벌을 집요하게 뒤진다.
‘동해인’은 거기서 발견한 사람의 모습이다. 그 사람들에서 작가가 인간 본연의 모습을 추구하고 있다면, ‘향’에서 작가는 추수 끝난 을씨년스런 논바닥과 발자국에 어지럽게 패인 갯벌의 모습을 통해 우리 본래 ‘고향’의 모습을 은유한다.
최근에는 국내전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러시안뮤지엄, 상하이미술관, 연해주 주립미술관 등 잇단 해외 전시를 통해 더 호평받은 이 화백은 그의 그림만큼이나 삶의 곡절이 많은 입지전적 작가다.
열 일곱 살 때 무작정 상경, 영화 간판을 그리기 시작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벤허’ 등 중장년층 이상이면 기억에 생생할 영화 포스터들이다.
미군부대에서 초상화를 그리며 생계를 꾸려가던 그는 작고한 노산 이은상 시인의 눈에 띄어 안중근 의사의 영정을 그렸고 이후 박정희 대통령 내외와 닉슨 방한시 초상을 그리기도 했다.
이런 독학의 과정을 거쳐 1978년 제1회 동아미술상을 받으면서 정식으로 순수미술에 입문한다.
또 한 가지, 그는 자신의 작품을 팔지 않는 작가이기도 하다. 해외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것을 빼고는 1,000여 점을 모두 소장하고 있다.
영화간판ㆍ초상화 일로 돈을 모으기도 했다지만 이제는 자신이 원하는 그림만을 그리겠다는 고집이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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