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자유와 산울림이 각각 30년 넘게 공연해온 대표작을 나란히 공연한다.자유는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연출 김정옥)를 21~30일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소극장에, 산울림은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연출 임영웅)를 24일부터 7월 28일까지 산울림소극장에 올린다.
두 편 모두 부조리극이다. 부조리한 현실을 부조리한 그대로 부조리한 형식에 담아낸다는 것이 부조리극의 요체.
배우들은 횡설수설 같고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말을 주고받는다. ‘대머리 여가수’에 대머리 여가수는 등장하지 않는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고도는 끝내 나타나지 않는 정체불명의 무엇(혹은 인물)으로 남는다. 관객은 어리둥절하거나 심각해질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어려운 것만도 아니다. 오히려 극의 전체적 분위기는 유쾌하다. 황당한 대사는 부조리한 현실을 조롱하는 날카로운 칼을 숨긴 채 논리를 넘어선 해방감을 즐긴다.
두 극단을 대표하는 원로 연출가 김정옥, 임영옥이 평생 다듬어온 역작이라는 공통점도 공교롭다. 양쪽 다 연기력으로 인정받는 간판급 배우를 내세워 더욱 흥미롭다.
김정옥은 1963년 극단 민중극장에서 ‘대머리 여가수’를 한국 초연했다. 그 뒤 자유로 옮겨 1969년 4월부터 1991년까지 400회 이상 공연했다.
11년 만에 이 작품을 다시 올리면서 그는 극중 두 쌍의 부부와 파출부 이름을 부시와 힐러리, 두환과 옥숙, 순자로 바꿨다.
관객들은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 내외가 무대에서 떠드는 뚱딴지 같은 소리를 듣게 됐다. 33년 전 초연 멤버인 박정자 권성덕을 비롯해 권병길 손봉숙 등 국내 최고 배우들과 20대의 새 얼굴 유밀레, 황신혜밴드 리더 김형태가 출연한다. (02)569-1003
‘김정옥표 대머리 여가수’에 맞서는 ‘고도를 기다리며’는 임영웅의 대표작. 임영웅은 1969년 12월 이 작품을 한국 초연하면서 극단 산울림을 만들었다.
극단 자유의 ‘대머리 여가수’ 첫 공연이 있고 나서 8개월 뒤이다.
임영웅과 산울림의 ‘고도…’는 1989년 세계 최고의 연극제인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 참가한 것을 시작으로 그동안 아일랜드 폴란드 일본 무대를 밟았다.
특히 지난해 일본에서 열린 베세토 연극제 초청공연은 일본 평론가들이 선정한 그해 일본에서 공연된 연극 베스트 5 중 최다득표의 영예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번 공연에는 ‘고도…’와 다섯 번째 만나는 한경구를 비롯해 박용수 전국환 정재진이 출연한다. (02)334-5915
부조리극의 관극 요령에 대해 ‘고도…’의 작가 베케트는 이렇게 충고했다. “사상이나 철학을 찾을 생각일랑 버려라. 보면서 즐겁게 웃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실컷 웃고 난 뒤 집에 돌아가서 심각하게 인생을 생각하는 것은 여러분의 자유다.”
‘대머리 여가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유를 설명하지 말아라. 머리 속을 비워라. 웃기 전에 생각하지 말라.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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