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 차이로 원숭이 띠동갑인 황선홍(34ㆍ가시와)과 차두리(22ㆍ고려대)가 한일월드컵축구대회에서 주전공격수 자리를 다투고 있는 경쟁상대라면 어불성설이다.한국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꼽히는 백전노장과 A매치 1골을 기록중인 기대주를 동급 비교하는 일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나이와 경력을 중시하지 않는 거스 히딩크 감독에겐 이미 월드컵 본선서 모든 공격수를 활용할 복안이 마련돼 있다. 때문에 결국 이 둘 역시 주전경쟁을 위해 동일선상에 서있기는 마찬가지다.
이회택-차범근-최순호로 이어지는 스트라이커 계보를 잇는 황선홍에게 월드컵은 쓰라린 기억 그 자체다. 1990년 이탈리아대회 3전 전패, 전성기였던 94년 미국대회서 여러 차례 골찬스를 놓쳤던 아쉬움, 98년 프랑스대회를 눈앞에 두고 겪은 끔찍한 부상. 12년 동안 쌓인 월드컵에 대한 좌절과 세월의 무게는 그를 짓이겼을 법 하지만 그는 당당히 한국의 희망으로 다시 섰다.
탁월한 위치선정능력과 골 결정력, 체력을 앞세운 전술소화능력으로 히딩크 감독 부임 이후 단 한차례도 히딩크호에서 제외된 적이 없다. “히딩크 축구엔 투톱의 개념이 없다”며 한 명의 공격수가 미드필더의 역할까지 수행해야 함을 가장 먼저 깨달은 것도 그였다.
북중미 골드컵 이후 핀란드전 2골로 대표팀의 지독한 골가뭄을 해소했던 그는 “어깨가 완쾌됐지만 또다시 본선 출전 좌절의 악몽을 겪고 싶지 않다”며 부상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월드컵만 생각하면 마음이 급해진다”그는 요즘 정신적 안정을 얻기 위해 독서삼매경에 빠졌다.
차두리는 요즘 황선홍에게 공격수 수업을 받고 있다. 아버지(차범근 전 대표팀 감독)의 빠른 발을 물려받아 스피드가 뛰어나지만 아직 패스, 위치선정, 상황판단 등 공격수가 지녀야 할 많은 부분들이 뒤떨어짐을 절실히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황선홍은 그에게 “너무 무리해 돌파하지 말고 시야를 넓히라”고 충고한다. 스피드와 파워를 앞세운 그의 발전은 눈부시다. 지난달 코스타리카와의 평가전서 1골1어시스트를 기록, 대표발탁 후 최고의 기량을 뽐내며 본선 엔트리에 당당히 합류하는 기쁨을 맛봤다.
‘국제수준에서 내가 통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다는 차두리는 “대표 발탁 후 전술적인 움직임이 많이 좋아졌다”며 조심스레 자신감을 드러냈다. 최근 머리를 모두 깎아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는 그는 “월드컵을 발판으로 독일 분데스리가의 명문 바이에른 뮌헨에 입단하고 싶다”는 원대한 포부도 숨기지 않았다.
한국 축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책임질 두 공격수에겐 많은 차이점이 있다. 홀아버지 밑에서 자란 황선홍에게 축구는 불우한 시절을 이겨낼 유일한 수단이었다. 반면 한국축구의 대명사 차범근의 2세 차두리는 축구를 아직까지 재미있는 놀이라고 여기며 나날이 흥미를 붙여가고 있다.
황선홍이 온갖 잔부상에 시달려 왔다면 차두리는 대표선수 중 부상이 없는 가장 완벽한 몸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차두리가 황선홍의 한마디 한마디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만큼 황선홍도 차두리의 스피드와 자질에 부러움을 나타내고 있다.
노련미가 돋보이는 황선홍과 빠른 스피드가 주무기인 차두리. 둘을 합쳐놓은 스트라이커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황선홍
생년월일=1968년 7월14일
출생지=충남 예산
신체조건=183cm,79kg
출신교=송곡초-용문초-용문고-건국대
클럽=부퍼탈(독일)-포항-세레소 오사카-수원-가시와 레이솔
A매치기록=96경기 49골
월드컵출전=90·94·98년
가족관계=부인 정지원과 1남1녀
▽차두리
생년월일=1980년 7월25일
출생지=독일 프랑크푸르트
신체조건=183cm,75kg
출신교=울산 양정초-울산 현대중-배제중-배제고-고려대
A매치기록=13경기 1골
가족관계=차범근-오은미의 2남1녀중 둘째
이준택기자
nag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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