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내한한 모스크바 국립 클래시컬 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이 18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개막됐다.이 발레단의 이름은 낯설지만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블라디미르 바실료프(71) 나탈리아 카사트키나(68) 부부는 볼쇼이 수석무용수 출신으로,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은 러시아 발레의 대가들이다.
이들 부부가 공동 안무한 ‘로미오와 줄리엣’은 러시아 클래식 발레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이미 다른 버전의 작품을 본 관객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겠다. ‘모범 답안’을 보여줄 뿐, 관객을 감동으로 이끌 만한 새로운 시도를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잘 안다. 그런데도 연극이나 영화, 발레로 다시 만나는 것은 ‘다른 무엇’을 기대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것은 다양한 형식일 수도, 등장인물의 재해석일 수도 있다. 불행히도 안무자는 너무 순진하고 정직했다.
이 작품에는 국립발레단이 2000년 국내에 처음 소개한 ‘로미오와 줄리엣’(장 크리스토프 마이요 안무)처럼 파격적인 변화를 준 인물 설정도, 유니버설발레단이 6월 초연하는 올레그 비노그라도프 안무 ‘로미오와 줄리엣’의 화려함도 없다.
이 작품은 대신 무용수들의 출중한 기량으로 작품성을 승부하는 정면 돌파를 시도한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무용수층이 너무 얇아 보인다.
로미오(안드레이 로파예프)는 힘이 없고, 이제 갓 학교를 졸업한 듯한 어린 소년, 소녀들이 섞인 군무진들도 어설펐다.
다행히 로미오 친구 머큐쇼 역을 맡은 니콜라이 체브체로프의 화려한 테크닉이 ‘러시아 발레의 영광’이 어떤 것인지를 잠시 짐작케 한다. 무대미술과 의상도 밋밋하다.
바실료프, 카사트키나 부부는 최고의 발레단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던 최고의 예술가들이다.
그러나 자신이 과거에 누렸던 러시아 발레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이들의 욕심은 그만 답보라는 함정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이 작품은 빛 바랜 훈장을 보듯 쓸쓸함을 안겨준다. 물론 영웅이 가진 상처의 흔적을 사랑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23일까지 오후 7시30분. 공연 문의 (02)2274-3507~8
/춤 전문지 ‘몸’ 편집장 박성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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