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우리나라 대표적인 대학의 총장들이 수난을 겪었다.총장실이 점거되는가 하면 총장이 교수들의 압력으로 사퇴하고, 학생회가 총장의 비리를 폭로하는 등 그 권위를 부정하려는 시도들이 있었다.
며칠 전에는 서울대 이기준 총장이 사외이사 겸임 등으로 물의를 빚은 것과 관련,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퇴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에는 당연히 총장 스스로 책임질 일도 있겠지만 우리 대학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원인 또한 적지 않다.
특히 총장 리더십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학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발상의 전환이 없는 한 비슷한 사건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경제규모로는 세계 12위 운운하는 수준으로 발전했지만 대학의 경쟁력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보기에 따라서는 '한심한' 수준에 있다는 악평을 받기도 한다.
우리 대학들이 이렇게 된 데에는 교육 행정의 간섭주의와 대학 사회의 안주, 한국 사회의 인프라 등.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총장의 리더십 문제다.
어느 조직이나 톱 리더의 자리는 중요하지만 선진국들의 앞서가는 대학을 보면 총장의 리더십이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 있다.
예컨대 상대적으로 후발 주자였던 미국 시카고대학이나 스탠포드대학이 세계 정상의 대학으로 우뚝 설 수 있게 된 데에는 총장들의 탁월한 리더십이 크게 기여했다. 최근에는 컬럼비아 대학과 남가주 대학 등이 급성장한 이면에 총장의 리더십이 돋보인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앞서 가려고 하는 대학들은 대개 총장 자리에 훌륭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을 선임하려고 애쓰고, 이들에게 소신껏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최고 경영자로서 존중해 주고, 특히 이들이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혁신을 추진해 가도록 상당한 기간 임기를 보장해 준다.
300년 역사의 미국 예일대학은 지금 22번째 총장이, 스탠포드대학은 110여년의 역사에서 10번째 총장이 일하고 있으니 평균 10년 이상의 임기가 보장되었던 셈이다.
그런데 우리 대학들은 어떠한가. 총장을 선임할 때 경영 능력이 검증된, 대학의 발전을 위해 가장 적합한 인물을 찾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하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총장 선출이 인기투표와 같은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또 재단의 말을 잘 듣는 인사를 고르거나, 일단 맡겨보고 여의치 않으면 쉽게 교체하는 등 소신껏 일할 수 있는 풍토와는 거리가 멀다.
재임 기간도 마찬가지다. 주로 4년을 임기로 취임하면 단임에 끝나거나 4년 임기마저 제대로 못 채우는 경우도 상당하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흔들고 그 권위를 깎아 내리려는 현상도 쉽게 벌어진다. 총장 자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부족이고, 이는 결국 우리 대학의 낙후성으로 귀결되고 있다.
우리 대학들도 이제는 변해야 한다. 총장이 최고 경영자로서 그 리더십이 어떻게 확립되고 발휘되느냐에 대학의 성쇠가 달려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또 훌륭한 총장의 모시기 위해 대학사회가 노력하고, 일단 선출되면 그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소신껏 혁신을 추진해 갈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설사 약간의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대학 발전에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면 총장실을 점거 농성하고 내쫓을 게 아니라 그 권위를 인정하고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도록 시간을 줘야 할 것이다.
21세기에는 대학의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 대학의 경쟁력 제고에는 또 총장의 리더십이 관건이다.
그리고 총장의 리더십은 총장과 대학 사회 구성원들간의 상호 존중과 협력으로 발휘될 수 있다. 총장 수난시대를 끝내고, 대학의 경쟁력을 키우려면 총장의 리더십 확립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은찬 한국리더십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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