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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세상의 균열과 혼의 공백' 낸 유미리 "땅에 발꿈치 대지는 않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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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세상의 균열과 혼의 공백' 낸 유미리 "땅에 발꿈치 대지는 않을겁니다"

입력
2002.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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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리(34)는 화를 내고 있다고 했다. “펜을 쥔 손에 힘을 꽉 주고 두 다리로 버티고 서 있다”고 했다.재일동포 소설가 유미리의 에세이 ‘세상의 균열과 혼의 공백’(문학동네 발행)은 거대한 세상과 어쩌면 살아 있는 동안 끝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싸움을 벌이는 자의 기록이다.

그는 이 에세이에서 선조와 고국에 대한 생각에서부터 일본 사회의 문제점까지를 특유의 직설적이고 격렬한 문장으로 털어놓는다.

유미리는 3월 조용히 한국을 찾아왔다. 동아국제마라톤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42.195㎞를 4시간 54분 22초에 완주했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마라토너였다. 중일전쟁으로 개최가 취소된 도쿄올림픽의 출전 후보 선수였다. 사회주의자였던 할아버지는 해방 후 좌익 탄압을 피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외할아버지와 라이벌이었다던,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씨에게서 들은 얘기다.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매일 아침 달리기를 했던 할아버지는 외손녀에게 이렇게 얘기하곤 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보폭이 다르기 때문에 함께 달릴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고독하다. 달린다는 것은 고독하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견뎌내는 일이다.”

평소 “나는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니다”라고 했던 유미리는 어머니의 고향 경남 밀양을 방문해서 이상한 감정에 젖는다. 언젠가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는 마을, 만난 적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처럼 ‘나는 누구인가’를 물으면서 달렸던 책의 1장을 지나 2장에서부터는 분노가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문제, 옴진리교 사건, 이지메 문제 등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는 일본에 맞서 무기로서의 펜을 거침없이 휘두른다.

그의 데뷔작 ‘돌에서 헤엄치는 물고기’가 1999년 6월 출판금지 판결을 받았다. 소설 속 재일동포 여성 예술가의 인물 묘사가 그 모델이 된 여성의 프라이버시 침해에 해당된다는 판결이었다.

월간지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문학에 대한 위협은 항상 ‘정의’라는 가면을 쓰고 있었습니다. 자유, 성, 가치의 혼란, 종교, 혁명 등을 주제로 한 소설을 탄압할 때 탄압하는 쪽은 항상 정의의 쇠망치를 내리쳤다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반문학적 행위를 한다는 생각은 조금도 가지지 않은 채 말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가 진술서에서 “유미리씨의 작품 ‘싹’은 문장이 종종 던져진 창이 되고 삐딱함이 있다”고 밝힌 데 대해 유씨는 “무슨 근거로 그런 판단을 한 걸까. 어떻게 자신에게 그런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분명하게 대답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의 빛나는 말과 글은 실제로 어긋나는 것”이라고 맞선다.

그러나 유미리는 알고 있다. “분노에 지배당하면 발꿈치가 땅(현실)에 닿아버린다”는 것을. “몸은 현실에 두고 있어도 항상 작품을 향해 손을 뻗으면서 발꿈치를 들고 서 있고 싶다. 작품 속에도 내 몸 둘 곳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땅(현실)에는 발꿈치를 내리지 않을 작정이다.”

그는 발꿈치를 들고 세상의 균열과 혼의 공백을 마주 보고 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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