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문화의 황금기를 일컫는 진경시대(眞景時代)라는 말은 이제 전문용어가 아니라 일반 명사처럼 여겨진다.정선(鄭敾ㆍ1676~1759)에서 시작되는 17세기말~18세기 일군의 화가들이 중국풍의 화풍에서 벗어나 조선 사람의 독자적인 눈으로 고유한 산수화, 즉 진경산수(眞景山水)와 풍속화ㆍ인물화를 그리면서 진경시대는 개화했다.
진경시대를 전후한 조선 회화의 정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진귀한 전시회가 열린다. 간송미술관(02-762-0442)이 19일~6월 2일 여는 ‘간송 40주기 기념 산수인물 명품전’이다.
간송미술관은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ㆍ1906~1962)이 1938년 설립한 국내 최초의 사립박물관. 10만석지기였던 간송은 일제시대 사재를 모두 털어 민족문화재를 사들였다.
훈민정음 원본, 동국정운, 고려청자 등 그가 평생 수집한 가치를 따지기조차 힘든 수많은 우리 문화재들이 간송미술관에 소장돼있다.
간송미술관은 연중 5월, 10월 두 차례 이들을 일반에 공개한다. 이번 전시회는 간송의 40주기를 맞아 그 중 100점이 넘는 조선시대 산수화와 인물ㆍ풍속화의 명품만을 보여주는 기획이다.
진경산수라는 용어 자체가 실은 간송에서 비롯됐다. 1985년 간송미술관이 조선시대 회화 작품을 분류하면서 붙인 말이다.
정선 신윤복 김홍도로 이어지는 큰 축에 윤두서 조영석 최북 심사정 김득신 등 대가들이 함께 그 시대를 수놓았다.
이번 전시회에는 이들의 작품과 함께 조선 초기의 대화가 안견 이상좌 등의 그림도 나온다.
또한 남영 장성 장경 등 중국 산수화 작가들의 회화를 함께 보여줘 중국의 그림과 비교할 수 있게 했다.
출품작의 백미는 역시 정선과 신윤복(申潤福ㆍ1758~?)의 그림이다. 금강산을 그린 정선의 ‘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에 담긴 21점 중 12점이 나온다.
정선은 금강산의 전경을 일생에 두번 화폭에 담았다. 36세 때 그린 ‘해악전신첩’으로 조선 제일의 화가로 떠오른 그는, 꼭 36년이 지난 뒤인 72세 때 다시 금강산을 사생한다.
진경산수를 창조해낸 노대가의 붓끝에서 금강산 일만이천 봉이 마치 한 송이 연꽃처럼 신묘하게 피어난 ‘금강내산’과 ‘총석정’ ‘만폭동’ ‘삼부연’ 등이 눈 앞에 보는듯하다.
서울의 옛 모습을 담은 ‘압구정’ ‘송파진’ 등이 주는 감회도 남다르다.
신윤복의 풍속화는 언제 보아도 웃음을 머금게 한다. 당시의 일상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생생하게 담겨있다.
국보 135호로 지정된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에 수록된 30폭 중 8점과, 조선 여인 초상화의 으뜸인 ‘미인도’ 등을 이번 전시에서 실물로 볼 수 있다.
유곽에서 웃통을 벗어부치고 다투는 남정네들을 그린 ‘유곽쟁웅’ 통금 시간에 포졸에게 붙들린 양반과 여인과 사동의 모습이 해학적인 ‘야금모행’ 등등 우리가 교과서에서 보던 바로 그 명품들이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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