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에게 잔인한 하루였다.막내 아들 홍걸(弘傑)씨가 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있던 그 시각에, 김 대통령은 마음 속 고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집무를 해야 했다.
홍걸씨가 검찰청 포토라인에서 “죄송하다. 부모님께 면목이 없다”고 했을 때도 김 대통령은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꾹꾹 누르며 내색하지 않았다.
김 대통령은 홍걸씨의 검찰 출두 후 30여분이 지난 오전 10시30분, 중소기업특위 업무보고를 받기 위해 관저에서 집무실로 왔다.
굳은 표정이었으나 업무보고는 차질 없이 진행됐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많은 질문을 하고 지시사항을 시달해 30분으로 예정된 보고가 1시간 가량 계속됐다.
한 참석자는 “남다른 애정을 쏟은 막내 아들이 검찰에 들어갔는데 어찌 마음이 아프지 않겠느냐”면서 “담담하려고 애쓰는 김 대통령의 모습이 안쓰러웠다”고 전했다.
김 대통령과는 달리 이희호(李姬鎬) 여사는 감정을 통제할 수 없었던 듯 하다.
이 여사는 차마 TV를 통해 생중계되는 막내 아들의 검찰 출두를 볼 수 없었던지 그 시각에 성인숙(成仁淑) 제2부속실장으로부터 일상적인 보고를 받았다. 원래 소식(小食)이었지만 최근 더욱 식사를 잘 못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 여사는 또 이날 주한 미 상공회의소 주최 ‘실업가정을 위한 후원의 밤’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주변의 건의를 받아들여 주최측에 양해를 구하고 일정을 취소했다.
한 관계자는 “이 여사는 항상 성경을 옆에 두고 고통을 삭이고 담담한 마음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다”고 전했다.
청와대 비서실은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도 ‘대통령 아들 문제와 국정의 분리’라는 방침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중소기업특위 보고, 월드컵 준비상황 보고 등 예정된 일정들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박지원(朴智元) 비서실장은 “청와대 비서실과 사정ㆍ정보기관이 제대로 대통령을 보좌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참회록을 쓰는 심경”이라며 “그래도 해야 할 국정과제는 철저히 하겠다”고 말했다.
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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