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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무성의 행정 '따가운 눈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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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무성의 행정 '따가운 눈총'

입력
2002.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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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정책을 총괄하는 문화재청(청장 노태섭)이 풍납토성, 석굴암 등 주요 문화재 보존ㆍ관리에서 졸속 행정과 무성의한 일처리로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풍납토성은 문화재청 졸속행정의 대표적 사례로 떠올랐다. 2000년 토성 내 연립주책 건립으로 유적 파괴 사건이 터졌을 때 대통령까지 나서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종합적인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했지만 정책은 여전히 겉돌고 있다.

더욱이 이곳이 한성 백제의 왕성임을 뒷받침하는 유구 발굴이 잇따라 장기적, 체계적인 발굴ㆍ보전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는데도 문화재청은 여전히 예산 부족 등을 핑계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남쪽 성벽 바깥의 해자(垓子) 추정 지역에서 최근 대규모 재건축 공사가 추진되는 등 유적 훼손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문화재청이 지난해 풍납토성 보존 방침을 정하면서 성벽 안 지역에 대해서만 사전 시굴조사 및 건축규모 제한을 하고, 외곽의 경우 경관훼손 방지 규정만 둔 채 시굴조사 없이 건물을 지을 수 있게 한 것이 화근이다.

그나마 서울시가 ‘약시굴(약식 시굴)’ 규정을 마련, 시행하고 있지만 지표면 아래만 살짝 파보는 약시굴로는 해자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풍납2동 309의2 삼표산업 사옥 건립 부지에서 약시굴을 실시한 건국대 조사팀은 지하 4~5m 깊이에서 뻘층을 확인했지만 “해자가 아니다”고 단정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터파기 공사 때 전문가 입회’를 조건으로 지난달 건축허가를 내줬다.

공사 과정에서 유물이 나오지 않는 한 나중에 이곳이 해자 지역으로 밝혀지더라도 손쓸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건국대의 약시굴 결과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어도 문화재청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서울시가 알아서 할 일”이라면서 “토성의 실체가 아직 완벽히 밝혀지지 않았을뿐 아니라 학술적 가치가 있다고 모든 지역을 다 보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담당자는 “문화재청은 풍납토성 문제를 은근히 서울시에 떠넘기고 있어 답답할 뿐”이라면서 “문화재 정책을 총괄하는 기관에서 먼저 기본적인 방향과 대책을 세워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주민들. 한 주민은 “약시굴 조사다 뭐다 해서 건축이 늦어지는 것은 감수한다 해도 언제 어떻게 방침이 바뀔 지 몰라 불안하다”고 호소했다.

석굴암 모형전시관 건립을 둘러싼 논란도 문화재청의 안일한 행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문제는 1970년대부터 논란이 돼온 사안이어서 사전에 충분한 여론 수렴이 필요했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불국사가 신청한 모형전시관 건립 계획을 건축 담당인 문화재위원회 1분과에서만 심의하도록 해 미술 담당 2분과 위원들을 비롯한 문화재 전문가들의 반발을 샀다.

문화재청은 지난달 현장설명회를 연 뒤에도 반대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자 1분과 위원들의 눈치만 살피며 이 문제를 덮어두고 있는 상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월드컵으로 들뜬 분위기를 틈타 모형전시관 건립을 강행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한 문화재 전문가는 “예산 부족 등 현실적 어려움은 이해하지만 근시안적 행정으로 일이 터질 때마다 우왕좌왕하는 것은 문화재 정책에 관한 기본 원칙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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