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을 진정으로 좋아한다면, 그 사랑이 순수하고 절실하다면, 굳이 많은 말이 필요할까. 사랑은 화려한 수사나 온갖 미사여구가 아니다.‘오버 더 레인보우’(감독 안진우)는 그런 영화다.
‘이것이 사랑이야’라고 소리 지르지도, 소나기 같은 열정에 사로잡혀 몸부림치지도 않는다. 이슬비를 맞듯 오랜 시간 자신도 모르게 함께 한 시간 속에 촉촉이 스며들어 그것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가슴이 복받치는 그런 사랑.
그런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기상캐스터 진수(이정재)와 그의 친구인 지하철 유실물센터 직원 연희(장진영)는 먼 길을 돌아온다. 그들은 몰랐다.
7년 전, 대학 사진동아리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 사랑이 ‘운명’처럼 시작됐다는 것을. 함부로 드러낼 수도 없었다.
꺼내보이는 순간 깨질까 두려워 가슴에만 묻어 두었던 사랑.
‘오버 더 레인보우’는 그 사랑을 그냥 찾아주는 게 쑥스러웠던지, 짓궂은 장난을 친다. 교통사고로 부분 기억상실증에 걸리는 진수.
망각은 좋은 것만 가져가지 않는다. 소중한 기억까지 가져가 버렸기에 그것을 복원하려는 무의식(IMMR현상)속에 나타난, 실루엣처럼 희미한 사진 속의 여자는 누구일까.
진수는 그녀를 ‘레인보우’라고 이름 붙여 놓았다.
진수는 연희의 도움을 받아 그 여자를 찾아 나선다. 추리게임을 하듯 즐거웠던 대학시절로 돌아가는 두 사람은 옛 친구들을 하나하나 만나지만, 그곳에도 진수가 찾는 사랑의 주인공은 없었다.
이쯤 되면 관객들은 그가 누구일지 눈치채지만, 영화는 기억을 잃어버린 진수처럼 끝까지 감춘 채 숙명의 고리에 두 사람을 집어 넣는다.
기억을 찾는 과정에서 진수는 연희를 사랑하게 되고 잃어버린 과거보다 현재를 선택한다. 그 순간 그가 그토록 애타게 찾던 사랑이 운명처럼 지금 그의 앞에 서 있을 줄이야.
외화 ‘오즈의 마법사’ 주제가에서 제목을 따온 ‘오버 더 레인보우’는 순정 멜로물이다.
이런 영화가 흔히 저지르기 쉬운 실수가 무작정 착하고 순수한 인물의 설정. 진수와 연희 역시 다를 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차츰 빠져드는 것은 정교하게 배치된 이미지들 때문이다.
잃어버린 것을 찾아주는 유실물센터의 연희, 내일을 예측하는 기상캐스터인 진수, 끝없이 내리는 비와 마침내 비가 그치고 나타나는 찌든 도심 속의 무지개, 첫 사랑을 표현하는 우산 받쳐주기와 끝내 전해주지 못한 노란 프리지어 꽃송이, 즐거운 대학시절의 에피소드와 무료한 일상, 수첩 속의 슬라이드사진과 뒤늦게 울리는 알람 시계.
이런 것들이 이정재와 장진영의 섬세하면서도 자연스런 연기와 잘 어울려 끝내 맺어주고 싶은 동화 같은 첫 사랑의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아름다운 사랑 영화에 많은 재주가 필요한 건 아니다. 17일 개봉. 15세 관람가.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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