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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43)14대 대통령선거 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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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43)14대 대통령선거 유세

입력
2002.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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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이 끝나자마자 나는 대통령선거 유세에 투입됐다.국민당은 이미 10월1일 3당 중 가장 먼저 14대 대선 중앙선거대책위원회를 발족, 위원장에 김동길(金東吉) 최고위원을 선출한 상태였다.

선거일은 12월18일, 후보는 김영삼(金泳三) 민자당 대표, 김대중(金大中) 민주당 대표, 정주영(鄭周永) 국민당 대표 등 8명이었다.

나는 11월21일부터 12월17일까지 계속된 법정선거운동 기간 동안 50여 차례 유세에 나섰다. 정 후보가 80여 차례 전국 유세에 나섰으니 내가 반 이상 좇아 다닌 셈이다.

그리고 그 회수만큼 정 후보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도 많다. 정 후보는 지금 생각해도 참 대단한 분이었다.

강원도 평창으로 유세를 갔을 때의 일이다. 정 후보는 당시 현대정공이 만든 전용 헬리콥터 4대를 풀 가동하며 전국 유세를 하던 때였다.

비바람이 몰아치던 그날, 헬리콥터 기장은 “도저히 못 가겠다”고 말했다. 이런 태풍에서 헬기가 뜨면 그것은 자살행위와 마찬가지라는 설명이었다. 정 후보는 노발대발했다.

“우리는 지금 전쟁을 하고 있는 거야. 태풍이 온다고 헬기가 안 뜨면 그게 말이 되나? 어서 가!” 결국 헬기는 이륙을 했고 중간에 원주에서 잠깐 쉬었다. 치악산을 넘어가려 했지만 비바람이 더욱 거세져 포기를 하려던 참이었다.

그 동안 나는 헬기 손잡이를 어찌나 꽉 잡고 있었던지 손에 경련이 날 정도였다. 그런데도 정 후보는 코까지 골며 잠만 잤다.

“오늘은 정말 힘들 것 같다”는 내 말에 정 후보는 “그러면 살살 넘어가 봐”라고 대답했다. 헬기가 무슨 자동차인가, 살살 넘어가게….

마침내 치악산을 넘어 평창에 도착했다. 태풍이 몰아치는 그 와중에 치악산을 진짜 ‘살살’ 넘어간 것이다.

정 후보는 헬기에서 내리자마자 내게 한마디 했다. “그 기장, 사람이 왜 그리 엄살을 부려? 세상에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이렇게 하면 되는데.”

정 후보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당시 여당에서는 “정 후보가 바지에 오줌을 쌌다”며 흑색선전을 하던 때였는데, 그것은 정말 터무니없는 거짓말이었다.

77세 노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힘 하나는 대단했다. 적어도 대선에서 무참히 패배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길거리 유세는 보통 내가 앞장을 서고 바로 뒤에 정 후보가 따라오는 식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와 악수를 하고는 정작 정 후보 본인은 모른 척하고 지나가는 게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한마디로 내가 얄밉게 보인 것이다. 어느 유세장에선가 갑자기 정 후보가 뒤에서 나를 확 낚아챘다.

나는 3~4m 뒷걸음질을 치다가 거의 넘어질 뻔했다. “이제 뒤에서 따라와.” 그렇게 화 난 정 후보 얼굴은 그때 처음 봤다.

이런 일도 있었다. 지역 유세를 하다 보면 출입 기자들과 술자리를 자주 갖기 마련인데 어느날 정 후보가 얼큰하게 취해 기생들과 춤을 춘 것이다.

한참동안 춤을 추고 난 기생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바지에 오줌 싼다는 말, 거짓말이에요. 춤 춰보니 젊은이랑 똑같아요. 힘이 장사에요, 장사.”

우리는 정말 이기는 줄 알았다. 정 후보도 열성을 다해 대선에 임했고 나 역시 지역구에는 단 한번도 내려가지 않은 채 ‘정주영 대통령 만들기’에 최선을 다했다. 그

렇게 하루하루가 가고 마침내 12월18일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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