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 이상의 중소기업이 공동으로 상표를 개발해 품질과 디자인, 애프터서비스 등을 관리하는 ‘공동상표제’의 명암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중소기업청과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 제대로 이뤄져 마케팅 활동을 충실히 하고 건실한 유통채널을 확보한 일부 공동상표는 히트상품으로 떠올랐지만, 그밖에 대부분의 공동상표는 인지도 및 판매 노하우가 달려 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 뛰는 공동상표
가보로·가파치등 마케팅공유 高성장
서울시 가구공업협동조합의 45개 회원사가 운영하고 있는 ‘가보로’는 외환위기 이후 매년 100~200% 성장하며 가구 명가로 자리잡고 있다.
공동상표를 등록한 1997년과 98년, 99년 매출액(홈쇼핑 판매 기준)이 각각 63억4,300만원과 50억2,900만원, 32억1,900만원에 그쳤던 것이 2000년 59억 9,700만원, 2001년 150억6,500만원 등 완연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올해 매출은 벌써 90억원(4월 기준)을 돌파해 연말까지 300억원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가구공업협동조합 윤석원 차장은 “우리나라와 외국의 브랜드에 OEM(주문자 상표 부착)방식으로 물건을 대줄 정도의 기술력과 45개 제조사와 대리점, 조합, 홈쇼핑 등 4개 채널을 통한 전천후 애프터 서비스가 먹혀 들었다”고 분석했다.
가구협동조합은 이에 그치지 않고 매 분기마다 회원사를 대상으로 마케팅과 판매기법을 교육하고 있다.
8개 중소기업이 참여해 타올 지갑 장갑 양말 시계 등 8가지 상품을 생산하고 있는 ‘가파치’도 성공한 공동상표로 꼽히고 있다.
이우평 차장은 “가파치는 최고의 품질과 서비스, 디자인에 최저가가 보태진 일등 상품”이라고 소개했다.
공동상표는 중소기업의 해외시장 공략을 위한 교두보 역할도 하고 있다.
대구의 중소기업 공동브랜드 ‘쉬메릭’과 경북의 ‘실라리안’은 월드컵과 부산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해외 마케팅을 강화했다.
쉬메릭은 코트라를 통해 160개국 유력 바이어 및 무역기관 등에 홍보물을 보냈으며 대구공항과 국제축구연맹(FIFA) 대구본부에 쉬메릭 전시판매장을 설치했다. 실라리안은 올해 경주에 전문매장과 신라장인 정신 체험 학습장 등을 세웠다.
케뮤주식회사는 공동상표 개발과 통합마케팅 네트워크를 구축, 중소기업의 블랙홀로 불리는 중국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중국 상하이(上海)에 한국 중소기업 유통센터를 개설한 데 이어 2006년까지 매년 10여개의 지사와 100여개의 대리점을 중국에 열 계획이다.
시장이 분산돼 있어 판매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어렵고 물류비용이 어마어마해 중소기업으로서는 엄두도 내기 힘든 중국을 공동 마케팅, 공동 판매로 뚫는다는 전략이다.
◈ 공도동망(共倒同亡) 공동상표
지자체들 상표 남발 관리부실로 '와르르'
일부 공동상표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공동상표들은 중기청과 지자체의 허가 남발과 사후관리 부재, 마케팅 부족으로 인해 유명무실해졌다.
13일 중기청에 따르면 96년부터 중소기업 공동상표 지원요령에 따라 도입된 공동상표제는 현재 23개 브랜드가 등록돼 있으나 소비자들의 인지도가 높거나 제대로 운영되는 상표는 가보로와 가파치 등 3개 정도에 불과하다.
매년 5~6개씩 증가하던 공동상표 등록건수도 올해는 1건에 그쳤다. 중기청 관계자는 “수익성에 대한 고려 없이 공동상표를 남발한 당국과 마케팅력 및 경영능력이 부족한 기업, 양자 모두의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지자체가 앞 다퉈 개발한 공동상표도 대부분 실패작이란 평가다. 서울의 경우 25개 구청 가운데 8개 구청이 공동상표를 개발했지만 별도의 전시ㆍ판매장이 없어 물건을 만들어도 판매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실제로 99년 하루 평균 100만원을 웃돌던 성북구의 공동상표 ‘트리즘’의 매출액은 최근 40만원대로 떨어졌다.
제품의 질을 높이기 위한 구청측의 기술 지원이 부족하고, 광고는 구청소식지에 싣는 정도에 그치기 때문이다.
가구제조업체 A사의 강모(52) 사장은 “공동상표에 대한 지원은 상표 개발 초기에만 한정돼 있어 정작 상품이 출시된 이후에는 처절한 돈 가뭄을 겪게 된다”고 말했다.
김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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