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처럼 통용되는 상품권이 갈수록 고액화하고, 판매액도 급신장하면서 뇌물이나 자금세탁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등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과거 10만원권이 고작이던 상품권은 1999년 발행액 한도가 폐지된 이후 최근에는 30만원, 50만원짜리 고액권이 등장,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1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쇼핑의 경우 30만원권, 50만원권 등 고액 상품권 판매액은 1999년 9억1,000만원에 불과했으나 2000년 109억원, 2001년 274억원 등으로 매년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전체 상품권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99년 0.3%, 2000년 2.8%, 2001년 4.5% 등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현대백화점도 지난해 30만원권과 50만원권 판매액이 전체 상품권 판매액의 6.3%인 238억원에 달했고, 신세계는 110억원 어치를 판매했다.
상품권은 유통 경로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실상 ‘고액 현금’이나 다름 없다. 정액 자기앞수표와 달리 이서가 필요 없는 것은 물론 사채시장에서는 액면가의 80~90% 선에서 언제든지 현금화도 가능하다.
특히 대부분의 상품권은 신용카드 구매도 금지하고 있어 자금원 노출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는 실정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1억원의 뇌물을 1만원권 현금으로 전달하려면 007가방 1개가 필요하지만 50만원권 상품권은 200장이면 족하기 때문에 일부에서 뇌물 수단으로 각광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상품권은 유통 구조를 왜곡시킨다는 점에서 더 큰 폐해를 낳는다.
공정거래위원회가 99년2월 상품권법 폐지와 함께 발행한도 및 상품권 지급보증 의무를 없애면서 업체들이 재무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상품권을 남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두상품권의 경우 회사측이 액면가보다 30~40% 할인된 가격에 대량으로 유통시키는 ‘밀어내기 매출’이 보편화하면서 상품권을 통한 매출이 전체 매출의 80%를 넘어섰다.
대형 백화점 역시 입점업체나 납품업자에게는 상품권을 강매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할인된 상품권을 사들인 기업들은 곧 바로 사채시장에 되팔아 비자금을 조성한다”며 “이 같은 할인 관행이 결국 제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물가 상승까지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연승(鄭然昇)연구위원은 “상품권이 실적 부풀리기 등의 수단으로 악용되면서 유통구조의 전근대성을 벗어나는데 장애물이 되고 있다”며 “유통산업 활성화라는 상품권의 순기능을 고려하더라도 발행 규모나 액면가, 지급보증 등에 대한 제한은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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